<6>중국경제가 디플레 늪에 빠져든 이유
금융시장 억압책에 투자처 못 찾은 자금
부동산 시장에 쏠리며 거품 키워
2017년 한한령이 한국엔 오히려 도움
편집자주
국내 대표 이코노미스트인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가 세계 경제의 흐름과 현안을 진단하는 ‘홍춘욱의 경제 지평선’을 3주에 1회 연재합니다.
2020년 파이낸셜타임스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베스트셀러 ‘인구 대역전’의 저자들은 중국 경제가 인플레이션을 수출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15~64세 인구(생산활동인구)가 가파르게 줄면서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 가격이 본격적으로 상승할 거란 주장이었다. 값싼 노동력이 줄어들고 토지를 비롯한 각종 요소 가격의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란 주장은 매우 그럴듯해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의 소비자 상승률은 마이너스(-)0.3%를 기록했다. 3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 중이다. 생산자 물가도 2022년 하반기부터 줄기차게 떨어지는 중이다.
중국은 어쩌다 만성적인 물가 하락 현상, 즉 디플레이션을 겪게 됐을까?
이 의문을 푸는 열쇠는 부동산 시장의 불황이다. 1980년대부터 강력한 산업화 정책을 추진했던 덩샤오핑 정부는 강력한 금융 억압 정책을 시행하며 수출 부문의 국영기업에 어마어마한 돈을 뿌려주었다. 여기서 금융 억압이란, 시장의 균형수준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예금과 대출 금리를 통제하는 정책을 뜻한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5.2%의 경제성장을 했다고 발표했지만 시중은행의 예금금리는 1.45%, 대출금리는 3.45%에 불과하다. 경제성장률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는 기업은 큰 이익을 누릴 수 있지만, 가계는 큰 횡액을 겪는 셈이다.
가계 입장에서는 다른 투자 대안을 찾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다. 2017년 말, 금융기관과 핀테크(금융+기술) 회사들이 판매한 금융투자상품 규모가 100조 위안(15조7,000억 달러)을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던 것은 3~7%에 이르는 확정 금리를 제공한 덕이었다. 그러나 2018년 중국 정부는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면서 이 상품의 매력을 크게 떨어트렸다. 중국의 금융규제당국은 우선 확정 수익을 보장하는 금융상품을 엄격하게 금지했고, 두 번째로 만기 90일 미만의 단기 상품 판매는 아예 팔지 못하게 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게 규제를 시행한 명분이지만, 사실은 정부의 통제 범위 내에 가계의 저축을 가둬 둘 목적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주식 투자가 매력적인 것도 아니다. 2015년 8월 5,186포인트를 기록하던 상해종합주가지수가 2016년 1월 2,665포인트로 주저앉는 등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가 땅으로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중국 주식시장의 부진을 불러온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주식공급' 확대 영향이 크다. 2015년 시가총액의 13%를 넘어서는 막대한 신규 상장 및 유상증자 물량이 쏟아지면서 시장을 질식시켰던 것이다. 즉 중국 주식시장은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곳이지, 가계가 부를 축적하기는 힘든 곳이다.
결국 시중의 자금이 부동산 시장에 몰리면서 2021년 한국의 집값 급등기 때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포모(FOMO) 현상이 중국에서 재현됐다. 자신만 뒤처지거나 소외돼 있는 것 같은 두려움을 갖는 증상으로,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뜻하는 영문(Fear Of Missing Out)의 머리글자만 따서 만든 신조어다.
‘지금이 아니면 이 가격에 집을 살 수 없을 것’이란 조바심이 확산하면서 중국의 주택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2018년부터 시작된 미‧중 무역분쟁으로, 미래 전망이 어두워진 국영기업들이 부동산 투자를 늘린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최근 전미경제분석국(NBER)이 발간한 흥미로운 자료에 따르면, 중국 정책당국이 반부패 캠페인을 벌일 때마다 중국 국영기업이 인수한 주거용 토지 물량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이유를 간단하게 살펴보자. 은행 입장에서 가장 선호하는 대출처는 국영기업이다. 국영기업은 파산의 위험이 극도로 낮은 데다, 강력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평방미터(㎡)당 주택가격은 1998년 1,854위안에서 2020년 9,980위안으로, 연평균 7.7%씩 올랐다. 이러한 안정적인 가격 상승은 국영기업이 기꺼이 부동산 투자에 나서는 유인이 됐다. 따라서 정부가 반부패 운동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공산당 간부 등 도시 부유층의 주택 매수 열기가 약화할 때마다 국영기업은 이 틈을 파고들며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
이런 식의 투자는 일시적으로는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 지방정부는 비싼 값에 토지를 처분할 수 있어 재정 여력을 높일 수 있다. 국영기업은 수익성 좋은 사업으로 돈을 벌고 은행은 손실의 위험을 억제할 수 있어 모두에 득이다.
그러나 호황이 영원히 지속될 순 없다. 코로나19 이후 2년 연속 인구가 감소한 데다,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 수출 부진이 장기화하자 경제성장을 불어왔던 부동산 투자가 독이 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2021년 중국 정부가 부동산 거품을 걷어낼 목적으로 이른바 ‘공동부유’ 정책을 시행한 게 치명적인 타격을 줬다. 중국 정부는 부동산 개발회사의 자산 대비 부채비율을 70% 이하로 제한하고, 이를 지키지 못한 기업에 대해선 추가 대출을 금지했다. 그러자 여력이 줄어든 부동산 개발회사들의 연쇄 부도 사태가 일어났다. 부동산 시장에 낀 거품을 걷어내기 위한 규제 정책의 약발이 너무 잘 들어버린 셈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지난해 중국의 상위 100대 부동산 업체의 매출액은 전년보다 17.3% 줄었다.
중국 부동산 시장의 붕괴가 강력한 디플레이션을 유발한 이유는 부동산 부문이 중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청년실업률이 2023년 6월 21.3%까지 상승한 것도 부동산과 건설 부문 침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게다가 부정적인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발생한 것도 수요를 위축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가계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투자돼 있기 때문에 주택가격 하락은 소비 의욕을 떨어뜨리고 담보 대출의 부실화 위험을 높인다.
향후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골드만삭스 등 주요 투자은행(IB)은 올해 중국의 부동산 경기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경우 부동산 투자가 10% 이상 줄면서 그 여파로 중국의 실질 GDP 성장률도 1%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수요 부진 이외에 공급 면에서도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이유가 넘친다. 부동산 불황을 타개할 목적으로 중국 정부가 정책 자금을 제조 부문에 대거 투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가 위축된 상태이기 때문에 생산설비 확대로 공급이 늘어도 판매할 길이 막막하다. 최근 유럽이 중국산 전기차를 불공정 무역 혐의로 조사하는 등 대중 무역장벽이 강화되는 것도 과잉 공급‧설비 우려를 키우는 부분이다.
이상의 분석을 요약하면, 중국의 디플레이션 위험이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물론 중국 정부가 금융 억압 정책을 폐기하고, 가계의 소비를 적극 부양한다면 문제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중국의 경제수장인 리창 총리가 “장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단기 성장을 추구하지 않았음에도” 5.2%의 성장을 달성했다고 자화자찬한 것을 감안할 때, 일거에 기존 정책 기조가 바뀔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
참 ‘새옹지마(塞翁之馬)’ 같은 일이다. 2017년 ‘한한령’ 이후 한국 기업들이 중국 내수시장에서 강제로 퇴출된 것이 ‘중국발 디플레이션’ 위험을 완화할 수 있는 일종의 예방주사가 됐기 때문이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