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야생동물 전시 금지 개정법 시행
보호시설 태부족... 카페 동물 유기 위험↑
"야생 습성 파악해 적절한 환경 만들어야"
18일 오후 경기 양주시의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보호소에서 만난 '라쿤(북아메리카 너구리)' 두 마리의 얼굴에선 불안함이 역력히 묻어났다. 철제 우리 안에 따로 분리돼 있었지만, 마치 믿을 건 너뿐이라는 듯 구멍 뚫린 우리 벽에 몸을 바짝 붙인 채 주위를 둘러보기에 바빴다.
라쿤들은 보름 전 원래 보금자리였던 서울 종로구의 야생동물 카페를 떠나 이곳으로 옮겨졌다. 협회 공식 보호 기간인 열흘을 훌쩍 넘겼지만, 다음 행선지는 불투명하다. 라쿤은 멸종위기종이 아니라 생태원으로 갈 수 없다. '생태계위해우려' 생물로 지정돼 다음 달부터 신고를 하지 않는 이상 개인이 기르지도 못한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22일 "갈 곳을 수소문해도 현재로선 마땅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바뀐 야생생물법, 취지는 좋다지만...
라쿤이 떠돌이 신세가 된 건 지난달 14일부터 동물원이 아닌 시설에서 야생동물 전시를 금지하는 내용의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점주가 폐업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개정법 취지 자체는 나쁘지 않다. 무분별한 전시와 관리 소홀로 계속 불거지는 학대 논란을 막고 동물 복지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법을 어기면 2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처벌 조항도 마련됐다. 현재 영업 중인 시설은 2027년 12월까지 4년의 유예기간을 주고 계속 운영하고 싶으면 동물원 허가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남겨진 동물들이다. 유예기간에도 먹이 주기 등은 제한돼 체험활동을 주된 홍보 전략으로 내세운 카페 업주 입장에선 굳이 영업을 지속할 이유가 사라졌다. 동물원 허가 역시 까다로워진 요건을 충족하기가 그리 간단치 않다. 지금까지는 최소한의 전시·사육 시설만 갖추면 됐다. 귀여운 외형에 직접 만질 수 있어 인기만점이었던 야생동물이 누구도 반기지 않는 천덕꾸러기가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폐업 결정이 속출하면서 덩달아 유기되는 야생동물도 늘고 있다. 실제 최근 들어 라쿤, 미어캣, 패럿 등이 줄줄이 구조돼 전국 각지 보호소로 이송됐다. 지난달 24일에는 경기 수원시에서 라쿤 한 마리가, 이달 9, 10일에는 각각 청주와 부산에서 미어캣과 라쿤이 구조됐다. 보호기간 중 숨진 동물도 있었다. 지난달 14일 서울 성북구에서 발견된 라쿤은 입과 턱에 큰 상처를 입고 치료를 받다 끝내 목숨을 잃었다.
보호소는 30마리 수용하는 한 곳뿐
관건은 유기 야생동물을 수용할 충분한 공간을 갖추느냐인데, 현실은 암담하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야생동물 전시가 금지된 시설은 157곳으로 개체수만 2,070마리에 이른다. 유기 개체는 2019년 204마리에서 2022년 299마리로 급증했다. 반면 이들을 장기간 수용할 수 있는 보호소는 충남 야생동물구조센터(30마리) 한 곳뿐이다. 보호시설 2곳을 새롭게 짓고 있지만 각각 올해(300~400마리)와 내년(800마리) 준공 예정이다. 환경부는 유기 야생동물을 임시로 보호할 시설을 전국에 10곳 지정했지만 새 시설 완공 전까지 공백은 불가피하다.
업주들도 대안이 없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7년간 동물카페를 운영한 A씨는 "보상은 고사하고 보호소마저 부족한 것은 유기를 종용하는 행태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동물카페에서 3년간 근무한 김세인(34)씨는 "라쿤은 영역 개념이 강한 동물이라 보호소에 가면 스트레스를 받을 게 분명하다"고 우려했다.
이제라도 정부가 법 시행에 따라 파생되는 부작용을 면밀히 점검해 맞춤형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현주 부천대 반려동물학과 교수는 "일반 반려동물보다 야생 습성이 강한 동물의 특성을 잘 파악해 적절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대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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