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대목 20여 일 앞두고 227개 점포 불에 타
화재 취약한 샌드위치패널 벽체 경량 철골조
“순식간에 몽땅 타 버렸어요. 막막하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데… 건물 새로 지으려면 일 년 이상 걸려요. 뭔가 대책을 마련해 줘야죠.” (신창희 전 서천특화시장상인회장)
“아무 생각이 없어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대체 손에 잡히지 않네요. 뭘 할지 모르겠어요.” (홍계월 장포수산 대표)
23일 오전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영하 8도, 북서풍에 실린 매서운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전날까지 생계의 터전이었던 가게들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한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한 수십 명의 상인은 할 말을 잃은 듯했다.
화마가 할퀴고 간 시장의 모습은 처참했다. 뼈다귀만 앙상하게 남은 조립식 철골구조는 검게 그을린 채 제멋대로 휘어졌고 주전자와 냄비만 나뒹굴고 있었다. 상인들은 여러 차례 대책회의를 열었지만 설 명절을 20여 일 앞둔 엄동설한에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시장 주변을 서성였다. 반건조 생선을 판매하는 김영란(45)씨는 "불이 활활 타오르는데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설 명절 대목이라 물건도 많이 받아 놨는데, 택배 주문도 모두 취소되고 2중 3중으로 힘들다”고 망연자실했다. 시장을 찾은 조희숙(82)씨는 '딸이 생선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설 대목도 못 보고 암담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날 충남소방본부에 따르면 전날 밤 11시 8분, 119로 서천수산물특화시장에 불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 당국은 11시 59분쯤 대응 2단계를 발령했고, 2시간여 만인 이날 새벽 1시 15분쯤 큰 불길을 잡았다. 인력 356명과 장비 51대가 동원됐다. 새벽 3시부터는 대응 1단계로 낮춰 오전 내내 잔불 정리 작업이 이뤄졌다. 완전히 불을 끄는 데는 9시간이 걸렸다. 시장이 문을 닫은 시간이라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점포 296개 중 227개가 전소하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 수산물동, 식당동, 일반동 내 점포들이 화재 피해를 입었고 별관인 농산물동과 먹거리동 65개 점포로는 번지지 않았다.
불이 난 시장은 2004년에 지은 경량 철골조 구조에 벽체는 스티로폼 샌드위치 패널의 건축물인것으로 알려졌다. 연면적 5,936㎡ 규모다. 불은 수산물 판매장에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서천소방서 관계자는 "수산물 1층 점포에서 스파크가 튀면서 불길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며 "수산물 점포와 잡화 점포 등 점포들이 이어져 있는 데다 불이 쉽게 번지는 조립식 샌드위치 패널 구조로 돼 있고, 강풍까지 불면서 불길이 급격히 확대됐다"고 밝혔다. 화재 당시 스프링클러는 정상 작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은 폐쇄회로(CC)TV에서 불꽃이 튀는 장면을 확인, 방화보다는 전기 누전으로 인한 화재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문가들도 서천수산물특화시장이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 벽체 구조라 화재 발생 후 한 시간도 안 돼 점포 227개를 태운 것으로 보고 있다. 스티로폼 샌드위치 패널은 전기 누전으로 작은 불티라도 점화되면 연기도 없이 타는 특성이 있다. 정부는 2010년 12월부터 2,000㎡ 이상의 다중이용시설 외벽 마감재는 준불연재급 이상을 사용하도록 건축법을 개정했다. 서천수산물특화시장은 그 이전에 지어졌다. 2015년 4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다친 경기 의정부시 오피스텔 화재도 스티로폼 샌드위치 패널이 사용된것으로 밝혀졌다. 건축사 P씨는 "경량 철구조에 샌드위치 패널 벽체는 화재에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화재현장을 찾았다. 상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윤 대통령 일행은 이날 오후 1시 30분쯤 도착해 먹거리동 1층을 둘러보고 특화시장상인회장 등을 만난 뒤 1시 50분쯤 자리를 떠났다. 이 과정에서 2층에 모여 있던 일부 상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만나주지도 않고 20분 만에 갔다" "사진만 찍고 떠난 것이냐"며 거세게 항의하며 불만을 표시했다. 행정안전부는 조속한 피해 복구를 위해 서천군에 특별교부세 2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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