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짚어본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
이탄희 판사의 사직서 파동에서 시작돼
'윤석열 지검장·한동훈 3차장'이 수사책임
재판 290차례 열리고 공소장 296쪽 달해
대법원 수뇌부(대법원장, 대법관 등)가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재판에 개입하고 법관의 독립을 침해했다는 의혹.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의 정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1심 재판이 4년 11개월간의 대장정 끝에 26일 마무리됐다. 의혹이 처음 제기된 지 7년 만에 나온 법원의 첫 결론은 전부 무죄. 당시 양 대법원장의 행위 중에 법을 위반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사건 시작은 7년 전인 2017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양 전 대법원장이 현직일 때다. 판사였던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으로 발령받은 뒤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 배경에 양 전 대법원장에게 비판적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견제하란 지시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후 대법원이 특정 판사 동향을 파악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은 확산됐다.
양 전 대법원장 재직 당시 대법원은 자체 조사를 거쳐 이 의혹을 "사실 무근"으로 결론 냈지만, 같은 해 9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취임하며 상황은 급변했다. 이듬해 6월 김 전 대법원장은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발표하며, 검찰 수사에 길을 열어줬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지휘를 했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당시 3차장검사로 사법농단 수사팀장을 맡았다.
수사가 시작된 지 약 8개월 만인 2019년 2월 11일, 결국 의혹의 정점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기소됐다. 그러나 전직 대법원장의 구속기소는 긴 드라마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기소 이후 1심 선고까지 무려 1,811일, 약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이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검찰과 다투면서, 재판은 하염없이 길어졌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된 범죄사실만 47개, 검찰 공소장은 두툼한 책 한 권 분량인 296쪽에 달했다. 검찰이 신청한 증인만 211명이다. 공판준비기일을 포함해 재판은 290차례나 열렸고, 그사이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부 직권으로 보석 석방됐다.
2019년 12월엔 양 전 대법원장이 폐암 수술을 받으며, 재판이 두 달가량 중단됐고, 2021년 초엔 법원 인사이동으로 재판부 구성원 3명(재판장, 배석판사 2명)이 모두 바뀌기도 했다. 통상 기록만 확인하거나 당사자들이 동의하면 공판 갱신 절차를 생략할 수 있지만, 양 전 대법원장 등은 형사소송법 원칙대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7개월 동안 재판정에선 과거 증인신문 녹음파일만 재생됐다. 일각에선 방어권 행사를 빌미로 법을 잘 아는 전직 법관들이 의도적으로 재판 지연 전략을 쓰는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법원장, 법원행정처 차장, 대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거쳐 대법원장에까지 올랐던 초엘리트 법관 양승태는 만 76세 생일을 맞은 26일 후배 법관들 앞에 서서 '선고'를 받았다. 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등 여러 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적은 있지만, 전직 사법부 수장이 영어의 몸이 된 것은 양 전 대법원장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그의 사법처리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고, 그의 재판은 여러 의미에서 '역대급'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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