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금융기관 민낯 : 새마을금고의 배신>
<4> 60년 전 약속은 어디로
전문가가 보는 새마을금고 혁신 방안
부실 만든 수직적 지배구조 개혁 시급
영리 경쟁? '서민금융기관' 되새겨야
감독 권한 금융당국 이관 검토 필요
"은행에 없는 주민 밀착 상품 제공을"
편집자주
새마을금고 계좌가 있으신가요? 국민 절반이 이용하는 대표 상호금융기관인 새마을금고가 창립 60여 년 만에 전례 없는 위기 앞에 섰습니다. 몸집은 커졌는데 내부 구조는 시대에 뒤처진 탓입니다. 내가 맡긴 돈은 괜찮은지 걱정도 커져갑니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새마을금고의 문제를 뿌리부터 추적해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치솟는 연체율과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대출 등으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된 새마을금고는 다시 서민의 든든한 뒷배가 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위기 상황은 맞지만 충분히 거듭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감독 권한을 금융당국으로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중앙회장 1인 중심의 수직적 지배구조를 바꾸는 걸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
지난해 11월 '새마을금고 경영혁신자문위원회'가 내놓은 경영혁신안 기본과제 29개 중에서도 6개가 지배구조 개혁와 관련돼 있다. 경영혁신안은 △금고에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을 통한 중앙회 회장의 권한 분산 △상시 감독ㆍ검사 체계 등 금융당국으로 감독권 이관 수준의 검사 기능 강화 △위기 상황에 대비한 건전성 확보 및 내부 견제 기능 확충을 골자로 한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24일 "혁신안 문장 하나하나가 금고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파급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인 새마을금고중앙회장도 최근 쇄신 결의문 발표를 통해 △혁신안 적극 수용 △조속한 입법 추진을 천명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새마을금고를 깊이 연구해온 전문가들을 통해 금고가 거듭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짚어봤다.
현대판 두레가 새마을금고의 초심
학계에선 혁신안이 마련된 것 자체는 환영할 일이지만, 새마을금고가 향후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설정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위기 수습용이라는 지적도 내놨다. 김정연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새마을금고는 지역사회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상부상조의 표본이자 현대판 두레"라며 "그러나 지금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고 덩치를 키우며 은행과 경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새마을금고가 서민금융기관 성격을 지닌 상호금융으로 출발했지만, 그 기능과 의미가 퇴색하면서 정체성을 잃었고 위기를 맞았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 등의 상호금융기관(커뮤니티뱅크)은 기본적인 역할에 충실하면서 구축한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시중 은행과 경쟁한다. 이재연 서민금융진흥원장은 “미국은 은행 6,000여 개 중 80%가량이 커뮤니티뱅크”라며 “은행과 차별화된 서비스로 지역 밀착도를 높여 경쟁력을 확보한다”고 말했다. 국내 상호금융기관은 전체 은행 자산(약 4,500조 원)의 20% 수준(1,000조 원)으로 성장했지만, 지역별 맞춤형 서비스 제공 측면에선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민 밀착 서비스로 은행과 경쟁해야
일본에서도 상호금융기관의 입지는 탄탄하다. 시장 점유율이 30% 수준으로, 시중 은행이나 지방은행과 비슷한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다. 최원석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일본에선 지역 특성에 맞는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제공함으로써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기관도 함께 성장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계절별로 수입 편차가 큰 관광지에서 숙박시설을 운영하는 사업자가 대출을 원한다면, 상호금융에선 해당 숙박시설의 성수기와 비수기를 감안해 탄력적으로 상환할 수 있는 상품을 내놓는다. 대출 기준이 엄격한 일반 은행에선 쉽게 시도하기 힘들지만, 상호금융기관은 '동네 금고'라는 장점을 활용해 맞춤형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
반면 대부분의 국내 새마을금고는 지역 특성과 무관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민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부동산 PF와 관련 있는 새마을금고의 관리형 토지신탁 대출은 16조4,000억 원(지난해 6월 기준)을 기록해, 4년 새 96배 늘어났다. 2017년 9조4,000억 원 수준이던 기업대출도 박차훈 전 중앙회장 취임 직후 수직 상승해 지난해 11월에는 107조8,000억 원으로 폭증했다. 서민금융기관이라는 고유의 색을 잃은 채 일반 은행들이 뛰는 방향으로 덩달아 내달리면서 초심을 잃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감시 강화하되 획일적 감독은 지양해야
새마을금고가 60년 전 초심을 되찾는다면 상황이 달라질까. 김 교수는 "금고가 협동조합을 표방해 세제 혜택 등 각종 특혜를 누리고 있는 만큼,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강화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새마을금고법상 새마을금고는 회원의 지위 향상과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법인이다. 지금처럼 몸집 불리기와 영리 추구를 우선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행안부가 맡고 있는 관리 감독 권한과 관련해선 금융당국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행안부 내에 전담 부서를 만들고 전문 인력을 충원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궁극적인 대안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민환 인하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감독권을 전문성을 갖춘 금융당국으로 넘기는 것만으로도 조직이 투명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상호금융기관이라는 특성을 감안해 일반 은행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감독권을 금융당국으로 옮겨 각종 기준을 끌어올리면 지표들은 개선되겠지만, 지역 특성에 맞는 역할 수행이란 관점에서 보면 상충되는 면도 있다"며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더라도 획일적으로 감독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보받습니다> 지역 새마을금고와 중앙회에서 발생한 각종 부조리(부정·부실 대출 및 투자, 채용·인사 과정의 문제, 갑질, 횡령, 금고 자산의 사적 사용, 뒷돈 요구, 부정 선거 등)를 찾아 집중 보도할 예정입니다.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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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장님의 이중생활
<2> 믿지 못할 골목 금융왕
<3>시한폭탄 된 PF 대출
<4> 60년 전 약속은 어디로
<5> 끝나지 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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