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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물납하고 회사 넘겨야 하나요"... 늙은 중소기업의 고민

입력
2024.01.30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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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룰 수 없는 숙제, 상속세 개편]
<중> 뒤처진 한국
높은 세율에 '꼼수 증여' 빈번
가업상속공제, 혁신 걸림돌
줄폐업 우려... 800조 시한폭탄

지난달 27일 만난 송공석 와토스코리아 대표가 자사 제품 앞에서 사업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인천=변태섭기자

지난달 27일 만난 송공석 와토스코리아 대표가 자사 제품 앞에서 사업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인천=변태섭기자

“열심히 키운 회사가 명예롭게 사회 공헌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줬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오히려 ‘꼼수 증여’를 부추기는 상황입니다.”

회사 설립 40주년인 2013년부터 승계를 생각해 온 송공석(73) 와토스코리아 대표는 지금도 대표직을 내려놓지 못했다. 증여세 부담이 커서다. 한국의 상속‧증여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상속‧증여액이 30억 원을 넘기면 세율 50%가 적용된다. 주식으로 물납하면 최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은 20% 추가 할증된다. 물려줄 주식의 6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뜻이다.

주요국의 상속·증여세 최고세율. 그래픽=김문중 기자

주요국의 상속·증여세 최고세율. 그래픽=김문중 기자


지난달 27일 인천 계양구 사무소에서 만난 송 대표는 말했다. “제 지분이 50.7%입니다. 주식으로 증여세를 내면 20% 안팎의 지분만 물려주게 돼요. 50년 넘게 피땀 흘려 일궈 놓은 회사 경영권을 증여로 잃어버리는 모순된 상황에 놓이는 거죠.”

와토스코리아는 1952년생인 송 대표가 20대 초반에 차린 ‘남영공업사’로 출발한 회사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에서 자취하던 그는 이웃에게 빌린 5만 원으로 연매출 180억 원의 회사를 일궜다. 양변기‧대변기‧세면기에 쓰이는 부속품 제조‧판매업 외길을 걸어 현재 국내 시장점유율이 70%에 달한다. 2005년 코스닥에 입성했다.

송공석 와토스코리아 대표의 증여세 납부 규모 추산. 그래픽=신동준기자

송공석 와토스코리아 대표의 증여세 납부 규모 추산. 그래픽=신동준기자


상속세 부담이 크다 보니 일각에선 우회 증여에 나선다. 회사를 상속‧증여받을 자녀 명의로 다른 회사를 세운 뒤 모든 역량을 동원해 그 회사를 키우고, 원래 회사는 쪼그려트리는 식이다. 송 대표는 “안정적인 기존 회사를 죽이고 새 회사를 키우는 것 자체가 막대한 사회적 손실”이라며 “회사와 근로자, 국가가 모두 손해 보는 게임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속‧증여가 여의치 않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인수합병(M&A)이다. 국내 가구업계 1위 한샘을 비롯해 쓰리쎄븐, 유니더스 등이 상속세 부담에 사모펀드에 팔렸다. 이 과정에서 수십 년 축적한 기술·경영 노하우가 사장되고 고용 인력마저 유지 못 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

사무용품 제조업체 빅드림의 여상훈(39) 경영혁신실장은 “지인 부친이 운영하던 정수기 필터 제조 중소기업은 상속세 부담에 결국 매각했는데, 회사를 인수한 사모펀드의 무리한 단기 고수익 추구로 결국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마지막 퇴로인 M&A마저 막힌 중소기업의 유일한 출구는 폐업뿐이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 중소‧중견기업 대상 가업상속공제를 운영 중이다. 10% 저율 과세 등을 적용해 상속세 부담을 줄여주는 식이다. 그러나 한계가 뚜렷하다. 여 실장은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뒤 사후관리기간(5년) 고용‧지분율 유지, 업종 변경 제한 등 기준이 엄격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의 부친이 1999년 설립한 빅드림은 문구·사무용품 유통업체로 출발했다. 2006년 주요 거래처인 월마트가 한국에서 철수하고 사기 피해까지 겹쳐 쇠락의 길을 걷자, 여 실장은 공공기관을 그만두고 경영에 뛰어들었다. 그는 온라인시장 공략과 과학교구 신사업으로 회사를 일으켰다. 2014년 13억 원이던 매출액은 2022년 69억 원까지 올라갔다. 2명이던 직원도 10배 늘었다. 여 실장은 “증여세를 어떻게 마련할지 막막하다"면서도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창업주 2세인 여상훈 빅드림 경영혁신실장이 지난달 26일 경기 성남시 사무실에서 본보 인터뷰에 응하며 과학교구 관련 사업 확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남=이유지 기자

창업주 2세인 여상훈 빅드림 경영혁신실장이 지난달 26일 경기 성남시 사무실에서 본보 인터뷰에 응하며 과학교구 관련 사업 확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성남=이유지 기자


사업을 확장할 때 오히려 발목을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가업상속공제를 받았다가 업종 변경 제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상당액의 이자까지 더해 토해내야 해요.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업종 변경은 당연한 건데, ‘가업’이란 말에 매몰돼 오히려 혁신 역량을 가로막고 있는 겁니다.” 현행 제도는 사후관리기간에 표준산업분류표의 제조업‧건설업‧유통업‧농업 등 대분류 내에서만 업종을 바꿀 수 있다. 농업회사가 유통업으로 변경하는 건 안 된다는 뜻이다. 수십만 개의 중소기업 중 가업상속공제 이용 실적이 110건(2021년 기준)에 그친 것도 엄격한 기준과 무관하지 않다.

가업상속공제 이용실적. 그래픽=김문중기자

가업상속공제 이용실적. 그래픽=김문중기자


높은 상속‧증여세율과 실효성이 떨어지는 승계 지원제도는 세대 교체를 늦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600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 중소기업 가업 승계 실태조사’를 보면, 설립 30년을 넘은 기업 중 대표자의 연령이 60세 이상인 곳은 80.9%에 달했다. 창업 1세대 대다수가 은퇴기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상속‧증여세 개편을 미룰수록 곪고 곪은 문제는 한국 사회에 시한폭탄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앞서 2021년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은 원활한 기업 승계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향후 10년간 중소기업 32만5,000곳이 사라질 것으로 봤다. 이어 실직자 307만 명, 손실 매출액 794조 원 등 경제 충격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기업 업력별 고용능력지수. 그래픽=김문중기자

기업 업력별 고용능력지수. 그래픽=김문중기자


송 대표는 “중소‧중견기업에 한해선 승계받은 이가 수익을 내서 상속‧증여세를 낼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며 “투자를 계속해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달라는 것이지, 상속‧증여세를 내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룰 수 없는 숙제, 상속세 개편] 글 싣는 순서

<상> 먼저 나선 선진국

<중> 뒤처진 한국

<하> 개편 어떻게


세종= 변태섭 기자
세종= 이유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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