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총선을 70여 일 앞두고 '게임의 룰'인 비례대표 선거제가 확정되지 않고 있다. 선거제 개편의 키를 쥔 더불어민주당이 원칙과 명분보다 의석수 확보에 매달려 오락가락하고 있는 탓이 크다. 병립형 회귀와 현행 준연동형 유지 사이를 오가던 민주당 지도부는 최근 권역별 병립형 비례제로 급선회했다. 병립형 회귀를 고수해 온 국민의힘이 "민주당이 준연동형을 포기한다면 권역별 병립형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반응하면서 양측 간 물밑 논의가 시작될 조짐이다. 다만 민주당 의원 80명이 어제 "병립형 퇴행은 소탐대실"이라고 반발했고, 정의당 등 야 4당이 국회 본청 피켓시위를 벌이는 등 선거제 확정까지 난관이 적지 않아 보인다.
권역별 병립형 비례제는 2016년 총선과 같은 병립형으로 회귀하되, 비례대표는 권역별로 나눠 뽑는 방식이다. 민주당 입장에선 지난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 개혁' 약속을 저버린 것이다. 병립형 회귀에도 권역별 비례제를 도입해 국민의힘은 호남, 민주당은 대구·경북(TK)에서 비례대표를 배출할 수 있는 '지역주의 완화'를 명분으로 출구를 마련했다. 반발 무마를 위해 비례의석 47석 중 15석 정도를 소수정당 몫으로 떼어두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지만, 2020년 총선 때 소수정당 몫(최대 30석)보다 줄어드는 셈이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에 맞장구를 치고 나선 것은 병립형을 고집해 준연동형이 유지될 경우, 개혁신당(이준석 신당)을 포함한 제3지대 신당의 비례의석 잠식을 우려해서다. 민주당도 과반의석 확보를 위해선 병립형을 택해 독자 비례의석을 갖는 편이 준연동형 유지 아래 소수정당들과 단일 비례연합정당을 꾸리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다. '제3지대 신당 견제'라는 거대 양당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거대 여야는 총선 1년 전까지인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다. 4년 전 '꼼수 위성정당'이란 부작용을 확인한 비례대표 선거제를 방치하다 이제 와 졸속 논의에 나선 것은 국민 선택권 침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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