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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 인큐베이터를 아시나요' 이정민 시그니처레이블 대표

입력
2024.01.31 05:00
수정
2024.01.31 16:5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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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육성은 무명 신인을 스타로 키우는 연예사업
8개 화장품 브랜드를 해외 수출...아프리카 북유럽 등으로 확대 예정

국산 화장품이 인기를 끄는 K뷰티 바람을 타고 한국은 프랑스 미국 일본 중국과 함께 세계 5위 안에 드는 화장품 수출국이 됐다. 하지만 신생업체(스타트업)가 해외에 나가는 일은 아직도 힘들다. 상표(브랜드)를 알리고 해외 판매업체를 뚫어 제품을 공급하려면 현지 문화와 특징, 시장 환경까지 아우르는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등장한 스타트업이 이정민(41) 대표가 지난해 3월 설립한 시그니처레이블이다. 이 업체는 알려지지 않은 국내 화장품을 해외에 진출시키는 K뷰티 인큐베이터다. 이 대표가 명명한 K뷰티 인큐베이터는 브랜드의 장점과 성공 가능성을 타진한 뒤 해외 판매업체에 제안하고 전략을 세워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K뷰티 확산의 전략가인 이 대표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이정민 시그니처레이블 대표가 20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직접 개발한 화장품 '지그태그'를 들고 K뷰티 인큐베티팅 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김예원 인턴기자

이정민 시그니처레이블 대표가 20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직접 개발한 화장품 '지그태그'를 들고 K뷰티 인큐베티팅 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김예원 인턴기자


브랜드는 연예인이다

K뷰티 인큐베이터의 겉모습은 화장품 분야의 무역 중개상(오퍼상)이다. "영세한 화장품 업체들을 대신해 수수료를 받고 화장품을 수출하죠. 간접수출자 제도에 따라 화장품 업체에서 제품을 공급받아 각 나라에 판매해요. 하지만 제품 홍보부터 판매까지 성장 전략을 수립해 화장품 브랜드를 키우는 점이 단순 오퍼상과 다르죠."

이 대표는 브랜드를 하나의 인격으로 본다. "브랜드는 연예인 같아요. 무명의 신인을 스타로 만드는 연예 사업과 비슷하죠.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끌려면 다양한 구성원이 모인 K팝 아이돌처럼 각 나라마다 다른 브랜드 전략이 필요해요. 그러려면 브랜드의 특징과 현지 시장 정보를 잘 알아야죠. 그래서 해외 진출을 원하는 업체들의 의뢰도 받지만 품질과 디자인의 독창성 등을 기준으로 직접 발굴도 해요."

이를 위해 직접 발로 뛰는 현지 조사와 조사업체들의 해외 시장 자료를 최대한 많이 수집한다. "시장 조사를 바탕으로 브랜드의 고유 특징을 최대한 해치지 않으면서 시장에 맞추는 방법을 알려줘요. 너무 상업성을 강조하거나 브랜드 철학만 고집하면 시장과 맞지 않죠."

조사가 끝나면 K팝 스타처럼 인터넷을 이용한 브랜드 노출에 들어간다. 이때 각 나라에서 인기를 끄는 인터넷 유명인(인플루언서)을 활용한 브랜드 시딩(seeding)을 적극 추진한다. "짧은 영상으로 해외 젊은층에게 인기 있는 '틱톡' 같은 SNS를 적극 활용해요. 인플루언서들에게 제품을 주고 자연스럽게 SNS에 노출시키죠."

브랜드를 알린 뒤 각 나라의 주요 유통업체들을 통해 제품 판매에 나선다. 이 대표는 여기 필요한 베트남, 인도네시아, 일본, 태국 등 10개국 대형 유통업체들과 제휴를 맺었다. "베트남의 TDIC, 국내에서 삼미숍으로 알려진 새미숍, 인도네시아의 뷰티하울 같은 대형 유통업체들과 일해요."

“화장품은 감성과 이성이 공존하는 상품”

언뜻 들으면 어느 업체나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런데도 K뷰티 인큐베이터가 필요한 이유는 비용만큼 효과를 올리는 가성비다. "누구나 같은 방법을 사용할 수 있지만 현지 특성을 모르면 돈을 쓴 만큼 마케팅 효율이 나오지 않아요. K뷰티 인큐베이터는 화장품 업체의 시행착오를 줄여 마케팅 효율을 높이죠."

여기에는 여타 상품과 다른 화장품의 특성이 한몫한다. "화장품은 감성과 이성이 공존하는 상품이에요. 좋아하는 인플루언서가 홍보하면 호기심에 구입하지만 제품이 좋지 않으면 절대 다시 사지 않죠. 즉 소비자들은 화장품을 살 때 디자인과 홍보 등 감성적인 부분을 보지만 기능과 효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재구매로 이어지지 않아요. 이게 핵심이죠."

화장품 판매의 주 요소인 감성은 인공지능(AI)이 대체하기 힘들다. "사람의 감성은 AI가 따라잡기 힘들어요. AI가 발달할수록 사람의 고유 영역인 감성이 점점 더 중요해져요."

이때 필요한 것이 전문가다. 이 대표는 화장품 유통 분야에서 10년 동안 일하면서 해외 각지 사정을 잘 아는 대형 유통업체들과 친분을 쌓았다. "해외 유통업체들을 뚫는 일이 만만치 않아요. 유통업체마다 특성이 달라서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면 안 돼요. 유명세 못지않게 지역별로 특징 있는 제품을 원하죠."

그렇다 보니 화장품 업체들의 재고 관리까지 가능하다. "해외 유통업체들과 연간 계약을 맺고 필요한 물량을 주문하죠. 그래서 화장품 업체들이 창고에 물건을 쌓아두지 않도록 재고 관리까지 해주죠."

현재 브랜드 인큐베이팅을 맡긴 화장품 업체는 나인위시스, 닥터바이오, 낫씨백, OOTD 등 8개사다. "나인위시스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일본 미국 등 7개국에서 팔리고 있어요. 닥터바이오는 지난해 해외에 알려지면서 베트남 인도네시아 러시아 일본 진출을 준비 중이죠."

중요하게 보는 시장은 미국, 일본, 동남아시아다. "나라마다 시장 특성이 달라요. 미국은 주마다 유력 유통업체들이 다르고 일본은 아직도 오프라인 매장에서 많이 구매해요. 동남아시아에서는 가격이 중요하죠."

이 대표가 브랜드 육성을 맡은 국산 화장품들이 베트남 유통업체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시그니처레이블 제공

이 대표가 브랜드 육성을 맡은 국산 화장품들이 베트남 유통업체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시그니처레이블 제공


자체 상표 제품도 개발

이 대표는 사업 확대를 위해 두 가지를 함께 추진한다. 자체 상표 제품과 전 세계 유통업체에 화장품을 공급하는 기업간거래(B2B) 서비스다.

'지그태그'라는 자체 상표 제품은 지난해 8월 처음 나왔다. "해외 시장을 겨냥해 제품 용기 등 디자인을 신경 썼죠. 앰플, 바르는 비타민, 손크림 등 3종류를 내놓았어요. 상반기 중 2, 3가지 더 나와요."

지그태그는 화려한 색깔로 제품의 특성을 강조한다. "화장품의 주요 성분을 용기의 뚜껑 색깔로 나타냈어요. 사과 성분이 들어가면 빨간색, 비타민은 노란색 뚜껑을 썼죠. 여기에 투명 용기를 채택해 색의 균형을 맞췄어요."

B2B 서비스는 내년에 시작할 계획이다. "화학자 등 전문가들이 화장품을 평가하고 이를 토대로 해외 유통업체에 공급하는 B2B 서비스를 준비 중입니다."

지난해 매출은 약 4억 원이다. 올해는 이보다 대폭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올해 매출 목표는 약 30억~40억 원입니다."

투자는 현재 논의 중이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과 개인투자자 등에게서 일부 투자를 받았고 여러 투자사들과 본격적인 투자를 논의 중입니다."

이 대표는 브랜드 육성 사업을 무명 신인을 발굴해 스타로 키우는 연예 사업에 비유했다. 김예원 인턴기자

이 대표는 브랜드 육성 사업을 무명 신인을 발굴해 스타로 키우는 연예 사업에 비유했다. 김예원 인턴기자


호텔경영학 전공, 브랜드 키우는 재미에 빠져 창업

원래 이 대표는 젊어서 돈을 잘 벌어 대학에 늦게 갔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여성 의류를 판매해 3개 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돈을 잘 벌었어요. 돈 버느라 뒤늦게 대학에 가면서 의류 사업을 접었죠."

대학에서는 호텔경영을 전공했다. 한국관광대를 나와 영국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대학과 스위스 국제경영학교에서 유학했다. 그런데 유학하며 진로가 바뀌었다. "유학 시절 동남아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 여러 외국어를 구사하는 그들이 우리보다 낮은 임금으로 일하는 것을 보고 호텔 분야에서 경쟁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죠."

그래서 2013년 전자상거래 업체 티몬에 입사해 인터넷으로 호텔 상품을 파는 일을 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 최대 온라인 여행사 씨트립으로 이직해 3년간 일했다. "씨트립 시절 성과가 좋아 최우수 직원상을 받았어요."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 2017년 유통 사관학교로 꼽힌 비투링크의 신사업 총괄로 옮기면서 화장품과 연을 맺었다. "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스킨1004라는 화장품 브랜드를 처음으로 동남아시아에 알렸죠. 해외 판매가 0원이었는데 동남아시아에서 크게 성공하며 해외 매출이 150억 원까지 올랐어요."

당시 그는 현지 유통업체에 숱하게 문전박대당했지만 끈기를 갖고 부딪쳐 뚫었다. "현지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현지인 채용 전략을 썼어요. 그들의 삶에 맞는 제품을 제안하면서 현지 업체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죠."

이후 2020년 맥브레인즈에 브랜드 사업 담당으로 합류했다가 브랜드를 키우는 재미에 빠져 지난해 창업했다. "브랜드를 키우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요. 창작자의 생각을 세상이 알아볼 수 있도록 설득하는 과정이 흥미롭죠."

창업 후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 곤란이다. "예전 직장들보다 월급이 낮아요. 회사가 성장할 때까지 개인적 욕심을 부리지 말자는 생각에 법정 최저 임금을 받고 있죠. 맞벌이하는 아내에게 5년 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어요."

앞으로 그는 미국, 아프리카, 북유럽 등으로 진출 지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나이지리아의 유통업체를 찾고 있어요. 북유럽도 한국 화장품을 선호해서 현지 유통업체들을 알아보고 있죠. 미국은 내후년 진출할 생각입니다."

그는 꿈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을 하는 것이다. "좋은 품질의 화장품을 저렴하게 쓰면 삶의 질이 올라가죠. 여기에 기여하고 싶어요."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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