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동시에 정부는 여야 간 재합의를 촉구하고 유가족 지원책을 발표했다. 야당 주도로 통과된 특별법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렇다고 희생자와 유가족을 홀대한다는 논란이 고조될 경우 총선을 앞두고 심각한 악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정부가 아닌 독립된 기관의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어 정부의 판단과는 간극이 큰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법안이 정부로 이송된 이후 11일간 숙고의 시간을 거치는 모양새를 취했다. 김건희 특검법을 포함한 쌍특검법을 바로 거부할 때와 대조적이다. 반면 거부권 행사 이유를 조목조목 밝힌 건 쌍특검법 때와 같았다. 당시 이관섭 비서실장이 전면에서 대통령실의 입장을 강조했는데, 이번에는 대통령실은 뒤로 빠지고 정부가 나섰다. 범정부 차원으로 대응전선을 넓혀 비판 여론을 최대한 무마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한덕수 총리가 총대를 멨다.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정부는 사고 원인을 명확하게 규명하기 위해 경찰에서 500명이 넘는 인원으로 특별 수사를 진행해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했다"면서 "검찰에서도 보완 수사를 실시했고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조사에도 성실히 임했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참사 원인과 대응·구조·수습 과정에서의 문제점 등이 밝혀졌고 책임자들에 대한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이란 사실도 언급했다. 검·경의 수사에 문제가 있다는 야당의 지적을 반박한 것이다.
법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구성될 '특별조사위'의 활동에 위헌 사유가 있다는 점도 짚었다. 한 총리는 “동행명령, 압수수색 의뢰와 같은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데 이는 헌법상 영장주의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며 “참사로 인한 아픔이 정쟁이나 위헌의 소지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을 국회로 돌렸다. 한 총리는 “진정으로 유가족과 피해자, 우리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재발 방지에 기여할 수 있는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정부도 적극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법안이 다시 국회로 돌아갔으니 여야가 다시 논의하라는 주문이 담겼다. 총선이 코앞인 민감한 상황과 여야의 입장 차를 감안하면 현실성이 떨어지는 내용이다.
다만 여당도 손놓고 있기만은 어려운 처지다. 거부권 행사에 부정적 여론을 감안하면 어떤 식으로든 유가족의 요청에 응할 필요가 있다. 유가족 협의회는 이날 공식 입장문을 내고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위해서는 정부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조사기구를 구성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닌가”라고 반발했다.
정부는 총리 주관 위원회를 구성해 지원에 나섰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다. △피해자 생활안정 지원금과 의료비·간병비 확대 △다양한 심리안정 프로그램 △영구적인 추모시설 건립 △배상 문제 지원 등을 약속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기존에도 유가족을 전담하는 인원이 있었지만 사실상 소통이 부족했다"며 "정부가 제대로 된 소통과 지원에 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유가족들은 "오직 바라는 것은 진상규명"이라고 완강한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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