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발병한 H5N1형 변이 바이러스
인체 세포에도 결합, 높은 감염성 확인
철저한 방역 없으면 또 다른 팬데믹 우려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변이 바이러스가 종을 넘어 인체에도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북남미, 유럽 등에서는 이미 물범, 바다사자 등 포유류가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돼 폐사하는 경우가 보고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신변종 바이러스 연구센터 최영기 센터장 연구진은 2021년 국내에서 발생한 H5N1형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의 바이러스를 분석한 결과, 변이로 인해 포유류 감염 가능성이 높아지고 동시에 병원성도 증가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31일 밝혔다.
급성 호흡기 질환인 인플루엔자는 종 특이성을 가지고 있어 조류 인플루엔자는 조류를, 돼지 인플루엔자는 돼지를, 사람 인플루엔자는 사람을 감염시키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람이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되는 등 이종(異種) 간 감염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7월 "인간과 생물학적으로 가까운 포유류에서 H5N1 바이러스가 검출되는 사례가 급격히 늘면서, 이 바이러스가 인간을 더 쉽게 감염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실제 여러 종을 거치며 유전자가 혼합된 새로운 바이러스가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을 초래한 적이 있었다. 2009년 세계적으로 유행한 신종 인플루엔자(H1N1)는 사람·돼지·조류의 인플루엔자가 섞인 경우였다. 이 때문에 고병원성 바이러스를 추적하고, 변이 바이러스의 인체 감염성 여부를 연구해 방역에 대비하는 게 필수적이다. 이번 H5N1이 신종 인플루엔자 같은 팬데믹을 초래할 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인체 감염 가능성이 확인된 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2021년 국내에서 발생한 H5N1형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인체 감염성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의 수용체(특정 물질과 결합해 세포에 신호를 전달하는 단백질)에 결합하는 부위(항원성 돌기)에 변이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닭과 포유류인 페럿을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에서 이 돌기가 조류의 수용체뿐만 아니라 포유류의 수용체에서도 높은 결합력을 보였다. 인체 유래 세포를 이용한 감염 실험에서도 기존 바이러스와 비교해 변이 바이러스의 돌기가 더 향상된 감염성을 드러냈다. 연구를 이끈 최영기 센터장은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수용체 중 특정 아미노산 변이로 인해 포유류 및 인체 감염 가능성이 커질 수 있는 바이러스로 변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통상 겨울철 철새에게서 발병한 조류 인플루엔자가 가금류에 확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철저한 방역이 없으면,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는 변이 바이러스가 인체에도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양계농장에서 발생하는 분진이 사람의 폐 속에 침투하거나, 살아있는 가금류가 유통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퍼질 수도 있다. 2013년 중국에서는 H7N9형 조류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환자가 사망한 사례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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