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저출산 대책을 총괄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장관급)을 교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앞서 나경원 부위원장이 정치적 갈등을 빚다 석 달 만에 물러난 데 이어 임기(2년) 절반밖에 소화하지 못한 현 김영미 부위원장까지 사실상 경질하는 것이다. 인구재앙은 엄습하고 있는데 정부 저출산 컨트롤타워는 자리를 못 잡고 삐걱대기만 하는 모습이다.
대통령이 당연직 위원장인 법률기구인 저출산위는 작년 3월 대통령이 7년 만에 회의를 주관하며 힘을 실어준 것을 제외하면, 딱히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 없다. 출산율 하락으로 인한 각종 재앙들이 하나둘 현실화하는데도 부처들이 제각기 내놓는 정책을 발표하는 수준에 머물렀을 뿐이다. 윤 대통령이 올초 특단의 대책을 주문한 데 이어 부위원장 교체 카드를 꺼내든 것도 이런 답답함의 발로로 이해한다. 후임으로는 현업 시절 불도저식 업무 실행력을 보여준 주형환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유력하다고 한다. 학자나 정치인이 아닌 경제관료의 추진력에 기대를 걸어보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하지만 위원회의 성과 부진은 책임자 한 명의 문제라기보다는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형식적으로는 컨트롤타워지만 예산 편성권도 정책 결정권도 없는 자문기구일 뿐이다. 그러니 차관급 상임위원은 총선을 앞두고 여당으로 이탈하고, 한 민간위원은 “전 정부의 실패한 정책만 되풀이한다”며 사표를 던진다. 이런 위원회에 당장의 성과만 독촉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나 전 부위원장이 빚 탕감을 저출산 대책으로 덜컥 내놓았듯 무리한 정책을 불쑥 내놓고 부처들과의 마찰이 커질 수 있다.
미 뉴욕타임스조차 14세기 흑사병을 소환하며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를 걱정할 정도로 엄중한 상황이다. 위원회의 법적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그간 요구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여야 모두 저출산 정책만큼은 적극적이다. 이 참에 국회 도움을 얻어 위상 재정립에 나서는 게 절실하다. 소소한 경제정책 만들 듯 독촉만 하면 저출산 대책이 나올 수 있다는 인식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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