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과 결혼해줘' '이재, 곧 죽습니다' 등 인기
'재벌집 막내아들' 인기 후 잦아지는 'n번째 환생'
'이생망' 세대 열망 반영...
'금수저' 아닌 '나'로 환생 새 변화
"무너진 삶은 내가 복구"
K드라마 '막장화' 가속 우려도
'5회'.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tvN)와 '이재, 곧 죽습니다'(티빙), '마이데몬'(SBS)에서 주인공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평균 횟수다. 적게는 한 번에서 많게는 열두 번까지 환생한다. 재벌가의 충직한 비서(송중기)로 일하다 누명을 쓰고 살해당한 뒤 그 가문의 손자로 회귀해 복수를 해나가는 여정을 그린 '재벌집 막내아들'(2022)이 인기를 끈 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부활이 잦아지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요즘 드라마에서 '한 번뿐인 인생'이란 말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주인공 중에 '온전히 산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 번뿐인 인생' 드라마에서 잊히는 이유
시청자는 대체로 '환생 드라마'를 즐기는 분위기다. 시청률 두 자릿수를 넘기기 어려운 안방극장 드라마 시청률 보릿고개 시절이지만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10%대(30일 기준·닐슨코리아 집계)를 넘어섰고, '이재, 곧 죽습니다'도 '술꾼도시여자들2'를 제치고 2020년 서비스를 시작한 티방에서 가장 많은 시청 시간(전편 공개 후 4주 기준)을 기록한 드라마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주인공이 죽었다가 환생하는 게 드라마의 새로운 흥행 공식으로 떠오른 셈이다. 이렇게 환생 드라마가 인기를 끌다 보니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은 빨리 죽기 바쁘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주인공 지원(박민영)과 '이재, 곧 죽습니다'의 이재(서인국)는 1회부터 죽는다. 올 상반기에 방송될 '선재 업고 튀어'(tvN)도 남자 톱스타(변우석)가 생을 마감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죽어야 사는' K드라마의 요즘 풍경이다.
'금수저' 아닌 나로 다시
20~40대가 주로 즐기는 트렌디 드라마에 환생물이 쏟아지는 시대적 이유는 선명하다. '이번 생은 망했어'(이생망)란 말이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처럼, 청년 세대들이 현실에 좌절하다보니 아예 죽고 다시 태어나길 바라거나 옛날로 돌아가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길 바라는 마음이 반영됐다. 환생을 통한 드라마 속 '인생 리셋'의 소망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복길 대중문화평론가는 "다른 이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 '금수저'가 되고 복수를 하려는 과거 작품들과 달리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주인공 지원은 나 자신으로 환생해 원한을 계획적으로 청산한다"고 변화를 짚었다. 각자도생의 시대, 무너진 삶을 남이 아닌 내가 직접 복구하고 싶은 열망이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현실에서의 개인의 절망과 좌절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라며 "내 남편과 결혼해줘'처럼 요즘 환생 드라마들이 사회 구조적 변화보다 개인적 삶의 변화에 더 집중하는 배경"이라고 현상을 바라봤다.
환생 장르의 범람은 드라마 제작 때 웹소설과 웹툰 의존도가 부쩍 높아지면서 이뤄졌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 플랫폼 다양화로 드라마들이 쏟아지면서 제작비 부담이 커지는 반면 정작 주목받는 기회를 얻기는 어려워진 드라마 제작 및 유통 환경 변화와 맞물려 있다. 웹툰 원작 청춘드라마를 만든 제작사 관계자는 "투자를 받기 어렵다 보니 웹소설과 웹툰으로 먼저 입소문을 탄 작품을 드라마로 기획하고 그렇게 흥행 위험 부담을 최대한 줄이려 하기 때문"이라고 변화의 배경을 들려줬다.
'복수 마라맛'의 위험
'내 남편과 결혼해줘'와 '이재, 곧 죽습니다'에서 주인공은 현생을 기억한 채 다시 태어난다. 현실에선 당연히 일어날 수 없는 비현실적 설정이다. 환생을 복수의 '마라맛'을 올리기 위한 자극적 수단으로만 쓰다 보면 개연성이 무너지게 되고 그 '막장화'의 부메랑은 결국 K콘텐츠 시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환생이란 비현실적 상황의 개연성을 드라마에서 어느 정도 담보하기 위해선 캐릭터의 감정에 몰입할 수 있도록 에피소드의 일관성 유지가 중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사람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라는 드라마의 기능이 마비되고 K드라마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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