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 인원만 입장 가능한 팝업 스토어
홀로 사색할 수 있는 '1인용 카페' 각광
터프팅, 가챠 파우치 등 아날로그 열중
"허무함 남는 숏츠보다 자기효능감 커"
"일부러라도 돈 내고 사색해보니 도파민 디톡스가 되는 거 같아요."
최근 1인 전용 카페에서 나 홀로 사색을 즐긴 대학생 전정훈(22)씨가 이용 후기를 전했다. 전씨의 평소 일일 휴대폰 사용 시간은 5시간을 훌쩍 넘는다. 주로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들여다보거나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이용한다. 전씨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 자꾸 휴대폰만 보게 되고 뭔가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도파민(쾌락과 고통을 주관하는 신경물질) 중독 증세를 토로했다.
전씨처럼 도파민 해독제를 찾는 Z세대(1990년대~2010년대 초반 출생)가 늘고 있다. 자극적인 숏폼 영상과 과시적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립돼 쉴 공간을 찾고, 뜨개질이나 스티커북 같은 아날로그 취미에 집중하고 있다.
1시간에 1명만… ‘쉴 공간’ 찾아
도파민 해독 공간이 인기다. 소파업체 알로소는 서울 성수동에 휴식에 초점을 맞춘 공간(윈터리빙룸)을 선보였다. SNS 업로드용 포토부스나 각종 판매용 굿즈로 공간을 채우는 대신 푹신한 소파들과 책장을 배치했다. 방문자들은 소파에 누워 책을 읽거나 구비된 레고를 조립하며 휴식할 수 있다. 입장 인원도 2시간에 10명으로 제한해 여유를 보장했다. 알로소 담당자는 "SNS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이 일부러 많이 찾아온다"며 "효율성만 추구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오히려 한가롭게 '딴짓' 할 시간이 아닐까하는 발상으로 선보였는데 그런 수요가 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단 한 명씩만 이용할 수 있는 카페도 각광을 받고 있다. 서울 서촌에 위치한 카페 ‘1인용’은 좁은 방 하나에 책상 하나와 책꽂이, 통창 하나로만 구성돼 있다. 1시간 단위로 이용료 1만5,000원을 내고 최대 2명까지만 예약을 받는다. 얼핏 독서실 독방 같지만 커피와 함께 책과 음반을 제공해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 차별화된다. 이 공간을 이용한 대학생 김모(23)씨는 "집에서 쉬는 것과 달리 커피, 음악, 책만 있으니 사색하거나 책에 몰입할 수 있었다"며 "SNS가 타인과 시간을 보내는 거라면 1인 카페에서는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추천했다.
터프팅, 가챠 파우치… 아날로그 취미로 심적 안정
수를 놓거나 뜨개질도 도파민을 해독하는 데 제격이다. 평소 뜨개질을 즐겼다는 장모(27)씨는 “SNS는 볼 때는 재미있지만 막상 다 보고 나면 허무함만 강해졌다”며 “어렵지 않으면서도 결과물이 남는 취미를 찾다 보니 뜨개질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장씨는 “뜨개질 관련 유튜브 영상에 최신 댓글이 계속 달리고, 간혹 뜨개질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면 수십 명이 동시 접속해 근황도 나눈다”며 “같은 세대 많은 사람들이 뜨개질을 즐긴다는 걸 실감한다”고 말했다.
뜨개질 유행은 최근 위빙(손베틀로 직조 짜기)·터프팅(실다발을 수놓는 기법)으로 범주가 넓어졌다. 이 역시 '반(反)도파민'을 찾아 나선 이들의 영향이 크다. 경기 파주시에서 터프팅 공방을 운영하는 성영은 작가는 “평소 고민이 많던 수강생 한 분이 터프팅을 배웠고, 작업에만 열중하다보니 생각이 많이 정화됐다고 좋아하셨다”며 “SNS에 빠져 있는 대신 무언가에 도전하는 것으로 자기 효능감이 높아지는 듯하다”고 전했다.
배움 없이 쉽게 시작할 아날로그 취미로 '가챠 파우치'나 스티커북 꾸미기도 인기다. 가챠 파우치는 키링이나 뽑기 기계 피규어인 가챠를 조합해 투명 파우치 안에 가득 넣어 꾸미는 것을, 스티커북은 각종 스티커를 수집해 다이어리에 붙이는 것을 뜻한다. 저렴한 재료들로 간편하게 즐길 수 있어 특히 10대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퍼졌다. 가챠 파우치 꾸미기가 취미라는 20대 A씨는 “손으로 반복적인 작업을 하면서 몰두하는 감각, 결과물이 나온다는 생산성이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20대 백모씨도 "결과물이 눈에 보일 때마다 행복을 느낀다는 점에서 자극적인 콘텐츠를 대체할 만족감을 준다"고 말했다.
도파민의 ‘반작용’... SNS에 보여주기는 금물
전문가들은 반도파민 유행을 두고 "자연스러운 '카운터 트렌드'(한쪽으로의 유행 쏠림이 심화하면서, 동시에 이를 거부하는 반작용이 나타나는 현상)의 등장"이라고 분석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수년간 자극이 많았던 사회에서 정신적으로 피로해졌으니 당연히 휴식 욕구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도 도파민 추구와 반도파민 추구는 번갈아서, 혹은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Z세대가 남들로부터 고립될 수 있다는 공포에서 스스로 해방된 결과란 해석도 나왔다. 최지혜 '트렌드코리아' 공저자는 "SNS에 중독된 현대인의 공통점은 고립공포인데, Z세대가 이를 극복하고 스스로 고립을 즐기기 위해 아날로그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단,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반도파민 유행이 외려 도파민을 유발할 수 있다. 취미로 스티커북을 만드는 B씨는 "취미 활동을 할 땐 확실히 '도파민 디톡스'가 되지만 결과물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 오히려 SNS를 더 찾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최 저자는 “Z세대부터는 개인의 모든 행위가 곧 온라인상의 콘텐츠가 되는 생태계가 이미 확립돼 있는 상태"라며 “완전한 고립만 추구한다고 여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SNS에 올리기 위한 반도파민 활동은 금물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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