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무산된 ‘서울 편입’ 또 꺼낸 여당
수도권이 전국 청년을 빨아들이는데
이젠 서울이 수도권의 블랙홀 되나
“선거를 위한 당리당략이 지방을 죽이고 국가의 미래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서울 메가시티 정책은 가뜩이나 비대한 서울을 더 비대하게 만들어 수도권 집중을 강화하는 몰상식한 정책입니다. 지방을 고사시키고 서울의 과밀 고통을 더 키우는 대단히 어리석고 위험한 발상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주 노무현재단이 개최한 ‘국가균형발전 20주년 행사’에 보낸 영상 축사의 한 대목이다. 이 축사는 ‘몰상식한’ ‘대단히 어리석고 위험한’ 같은 자극적 단어 위주로 보도됐다. 또 “선거를 앞두고 친문 세력 지분 확보에 나선 것”이라는 식의 정치공학적 발언이란 해석이 많았다. 청와대에 있을 때도 정치적 계산이 자주 문제가 됐던 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그런 감각이 향상됐을 것이라는 전제의 분석은 수긍하기 힘들다. 지금 야당은 선거를 앞두고 전체 판도를 좌우할 서울 인접 도시 표를 의식해 서울 메가시티가 ‘몰상식한 정책’임을 알면서도 침묵하고 방조하고 있다. 그런데도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며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 ‘지방 청년 실종’ 기획 취재를 위해 강원 양양에 갔다. 양양이 서핑 인기 등에 힘입어 ‘젊은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는 소식에, 변화의 비결을 찾기 위해서다. 그곳에서 청년 활동을 하는 이에게 “양양에 체류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게, 양양 출신 청년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물었더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이 돌아왔다. “10년 이상 양양에서 청년 활동을 했지만, 양양에서 나고 자란 청년은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양양 해변을 가득 메운 청년도 그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청년도 대부분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양양 출신 청년은 양양에서마저 소외돼 있다.
그럼, 수도권 주민들은 혜택 받고 있다고 생각할까. 그렇지 않다. 점점 벌어지는 서울 집값과의 격차에 무기력해지고, 교통지옥에 시달리다 보면 뭔가 부조리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을 승부처로 여기는 여당은 “서울로 편입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서울 인접 도시 주민들 마음을 얻으려 애쓰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3일 김포를 찾아 “봄이 오면 김포는 서울이 될 것”이라고 했고, 2일엔 구리에서 “서울 편입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연말 김기현 전 국민의힘 대표가 약속했던 김포 구리 하남 고양의 서울 편입이 무산된 것에 대해서는 사과나 해명도 없이, 바뀐 당 대표가 같은 약속을 되풀이한 것이다. 이 와중에 국민의힘이 지난해 11월 서울뿐 아니라 광주 부산 등의 메가시티 추진을 목표로 구성한 ‘뉴시티 프로젝트 특별위원회’는 흐지부지되는 모양새여서 여당 내에도 영남 출신 중진과 의원들의 심기가 편치 않은 모양이다.
정부 여당이 비수도권 지역 발전 약속을 뒤집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대선 공약이던 ‘500개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은 지난해 상반기 로드맵을 발표하겠다고 약속하며, 전국 비수도권 지방자치단체를 들썩이게 하더니 무기 연기됐다.
정부 여당이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공약도 모른 척하고 또 불과 3개월 전 약속한 부산 광주 메가시티 추진은 뒤로 미뤄 놓은 채, 서울 메가시티 약속만 지킨다면 과연 한국은 어떻게 될까. 정부 여당이 부추기지 않아도 지금 한국은 서울과 수도권이란 블랙홀이 전국의 사람과 자본을 빨아들이며, 비수도권은 물론 수도권마저 점점 살기 힘든 곳이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수도권마저 서울과 나눠 서울을 수도권의 블랙홀로 만들겠다며 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메가시티는 몰상식한 정책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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