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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뚫린 제재… "러시아산 석유, 인도 거쳐 영국 버젓이 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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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뚫린 제재… "러시아산 석유, 인도 거쳐 영국 버젓이 수입"

입력
2024.02.07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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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원유 정제 항공유 영국서 대량 유통"
대러 제재 불구 '원산지 규정' 허점 탓

러시아 서부 타타르스탄에서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타트네프트사가 원유를 시추하고 있다. 타타르스탄=타스 연합뉴스

러시아 서부 타타르스탄에서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타트네프트사가 원유를 시추하고 있다. 타타르스탄=타스 연합뉴스

'푸틴의 돈줄'을 말리기 위해 서방이 금수 조치한 러시아산 석유가 버젓이 영국으로 우회 수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국경 바깥에서 가공된 항공유·디젤유 등 석유 제품의 경우 원산지 '세탁'이 가능한 규정상 허점이 악용된 결과다.

서방은 이런 문제를 알면서도 러시아산 원유로 만든 석유 제품 완전 금수까지 손대지는 못하고 있다. 이를 모두 막을 경우 전 세계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러 석유 수입 없지만 제품은 영국 유입

5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이 입수한 비정부기구 글로벌위트니스의 연구논문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산 원유를 정제한 석유 제품 약 520만 배럴이 영국으로 수입됐다. 이 가운데 460만 배럴이 항공유로, 영국 항공편 20회 중 1회꼴로 이 연료가 사용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핀란드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의 또 다른 보고서도 2022년 12월부터 1년간 영국에서 러시아산 원유로 만든 석유 제품 약 5억6,900만 파운드(약 9,494억 원)어치가 유통됐다고 추정했다고 BBC는 전했다.

이는 '원산지 규정'상 허점 때문이다. 이를테면 러시아산 원유라도 인도에서 가공을 거친 석유 제품은 원산지가 인도로 분류된다. 인도산으로 둔갑하면 '합법적'으로 영국 수입길이 열린다. 이 경우 "불법이 아닐뿐더러 러시아산 원유 금수 조치를 위반하는 것도 아니"라고 BBC는 짚었다. 영국 정부도 "2022년 러시아 제재 이후 러시아산 석유 수입은 없었다"는 게 공식입장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보스토크=AF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보스토크=AFP 연합뉴스


제재 약발 떨어져… 서방 '딜레마'

세계 3위 석유 생산국인 러시아는 에너지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나라다. 서방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산 원유를 배럴당 60달러 이상으로 거래하지 못하도록 상한제를 두는 등 제재에 나선 이유다. 하지만 원산지 규정상 허점은 이런 대(對)러시아 고강도 제재의 효과를 약화시킨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을 지난해 예측치(1.1%)의 두 배인 2.6%로 올려 잡았다. 서방의 경제 제재가 먹혀들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아이작 레비 CREA 유럽·러시아 책임자는 "원산지 규정의 허점은 러시아산 원유 수요를 증가시켜 판매량을 늘리고 가격도 오르게 한다"며 "크렘린(러시아 대통령궁)으로 유입되는 전쟁 자금도 늘어날 수 있다"고 BBC에 말했다.

러시아가 자국산 원유를 정제한 석유 제품을 영국에 팔아 얻은 간접 수익은 1억 파운드(약 1,667억 원)가 넘는다고 CREA와 글로벌위트니스는 추산했다. 대부분 러시아 제재에서 발 빼고 있는 인도와 중국에서 정제되는 석유 제품을 통해서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산 원유로 만든 석유 제품까지 전면 금수 조치를 취해줄 것을 서방에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다. 물류 정보업체 케이플러의 맷 스미스 애널리스트는 "러시아산 원유나 러시아산 원료로 만든 석유 제품을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석유 제품 물량 부족으로) 에너지 가격 급등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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