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포스텍 ISDS 공동기획
[지방 청년 실종 : 10회 양양 끝]
편집자주
청년들이 사라지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이미 오래된 현상이다. 한국일보와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 연구소(소장 배영ㆍ이하 ISDS)는 비수도권 지역 곳곳을 찾아다니며 청년에게 지역을 떠나는 이유를 직접 물어보고, 양적 질적 조사 방법을 사용해 미시적 근거를 찾아 매달 첫 번째 수요일에 비수도권 지역을 한 곳씩 분석해 게재한다.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역의 청년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강원 양양군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인구 2만7,000명에 65세 이상이 34%인 초고령 지역이지만, 서핑 붐을 타고 양양을 찾는 젊은이가 급증하면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양양을 찾은 방문객을 토대로 산출한 ‘생활 인구’를 기준으로 보면 7만5,000명으로 치솟고, 하루 이상 머문 ‘체류 인구’가 1만3,000명으로 정주 인구의 47.6%다. ‘닷새는 도시, 이틀은 양양’에서 지내는 사람이 양양 주민의 절반이나 되는 것으로, 양양 주민 대비 체류 인구 비중은 제주 서귀포를 큰 폭으로 앞서는 전국 1위다.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으로 수도권과 거리가 2시간대로 단축되면서 방문객이 늘어나기 시작하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폭발적으로 확대되며 부동산도 들썩거렸고 급기야 2021년 양양의 공시지가 상승률이 전국 1위를 기록했다. 강원도의 지역내총생산(GRDP)은 5년 전보다 8.5% 증가(2020년 기준)했는데, 양양군의 GRDP는 11.6% 증가를 기록해 강원지역 성장을 이끌었다. 이런 양양의 활기에 주목한 정부는 생활 인구와 체류 인구를 늘려 인구소멸 위기에서 벗어나는 동력으로 삼으려 ‘디지털 관광 주민증’ 등 각종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디지털 관광 주민증’은 인구 소멸 위기 지역을 방문한 사람이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주민증을 발급받으면, 지역 내 숙박 체험 등 각종 여행 편의시설의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것이다.
지난해 6월부터 이어온 기획 ‘지역 청년 실종’의 마지막 취재 지역으로 양양을 선택한 것은 양양의 이런 성과를 통해 지역 청년 실종을 끝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양양에서 만난 청년들의 목소리는 희망보다는 우려가 더 강했다.
양양이 국내 최고 젊음의 해변이 된 것은 결코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서울양양고속도로의 개통이 중요한 계기가 됐을지 모르지만, 그 원동력은 과도한 경쟁과 과밀의 한계에 도달한 수도권에서 탈출하려는 젊은이들이었다. 10여 년 전부터 도시 생활에 지친 청년들이 서핑을 매개로 하나둘 양양 해변에 몰려들었다. 그들은 친환경을 중요한 가치로 공유하며, 텅 비어 있던 양양 해변 곳곳을 매력적인 곳으로 탈바꿈했다. 또 그들 중 굳이 도시에 살지 않아도 생계나 경력 유지가 가능한 의사나 예술인 등 전문직 종사자들을 시작으로 정착자도 늘어나면서 현남면에 마을이 생기기도 했다. 이 모든 변화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하나 없이 자발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그런데 차츰 서퍼들이 가꾼 해변이 알려지고, 코로나19 사태 이후 국내 관광이 갑자기 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해변 상가의 임대료가 오르고 대형 상가 건축이 이어지며, 초기 서핑 문화를 만들어온 서퍼들이 뒤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비극이다. 그들이 밀려난 자리에 유흥주점들이 들어서며 조용하고 깨끗했던 양양 해변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양양 주민은 과잉 관광의 피해를 호소하고, 가족 단위 방문객은 양양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이는 증가하던 인구가 지난해 다시 줄어들고 있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해변과 산악 지역의 격차다. 양양 전체 면적 중 해발 100m 이하 지역은 25%이고, 나머지는 높은 산과 계곡이다. 해변이 개발되는 동안 산악 지역은 계속 쇠락하고 있다. 1970년대까지 국내 철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던 양양의 광산은 폐광한 지 오래고, 법수치 계곡 등 주변으로 펜션 촌이 번성한 적도 있지만 이 역시 많이 사라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양양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의 실종이다. 관광 외에 이렇다 할 일자리가 거의 없어, 이어받을 가업이 없는 청년들은 도시로 떠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 결과 양양의 청년 인구는 전체 인구의 15%에 불과하다. 이는 인접한 속초와 강릉에 비해서도 5%포인트 이상 적은 것이다. 정주 청년이 이렇게 줄어드는데, 양양을 해변에 몰려든 외지 청년만 보고 ‘젊은 양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반면 노인 인구는 34%로 전국 18%는 물론 인접 지역 24%보다 많다. 체류 인구 전국 1위 양양의 위상이 불안한 이유다.
이런 문제들은 안심지수와 만족지수를 통해서 통계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해당 지자체와 인구 규모가 비슷한 수도권 도시를 비교했지만, 양양 인구가 너무 적어 규모가 비슷한 수도권 도시가 없다. 그래서 인근 강릉 속초 그리고 서울을 비교 지역으로 골랐다. 포스텍 사회문화데이터사이언스연구소(ISDS)가 여러 통계자료 및 기사와 댓글, 그리고 온라인상에서 주민들의 이야기와 국민민원데이터 등 다각적인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먼저 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인 일자리, 안전, 자연환경, 의료 분야를 비교한 안심 영역을 살펴봤다. 양양의 일자리 지수(서울을 1로 놓고 비교)는 0.38로 강릉·속초(0.33)보다 약간 높았다. 대형 리조트 두 곳 외에는 대규모 일자리를 제공할 업체가 거의 없어도, 최근 관심을 받는 해변 관광지 중심으로 일자리가 늘어난 결과로 보인다. 일자리 창출 효과는 대기업보다 다양한 중소기업들이 생태계를 이룰 때 더 크다는 공식을 여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기·수질·소음·녹지·환경 등을 측정한 환경지수(0.81)도 강릉(0.75) 속초(0.77) 서울(0.66)보다 높았다. 반면 생활안전과 범죄율 등을 비교한 양양의 안전지수는 0.1로 서울(0.6)과는 격차가 컸고, 강릉(0.3) 속초(0.2)보다 더 낮았다. 양양 자체 경찰서가 없고, 최근 관광객 증가로 경범죄 등이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 소아과 진료와 미충족의료율(병원 진료가 필요했지만, 받지 못한 사람 비중)로 산정한 의료지수도 0.53으로 속초(0.79) 강릉(0.74) 서울(0.96)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다음 생활 편의성을 비교할 수 있는 만족 영역을 살펴보면 양양이 사교육 대규모 점포 생활 어메니티 등 대부분 영역에서 속초와 강릉보다 부족했다. 방문객과 체류 인구가 아무리 많더라도, 정주 인구가 서울 대단지 아파트 주민 수 정도에 그치는 양양에 대규모 쇼핑센터나 의료시설이 들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체류 인구가 정주 인구로 바뀌려면 넘어야 할 문턱이 너무 높아 보인다.
양양은 심각한 고령화와 낮은 청년인구 비율, 관광업 외에 뚜렷한 비교 우위를 지닌 산업 부족 등을 고려할 때 체류 인구를 늘리는 전략을 선택한 것은 옳은 방향이다. 또 대부분 도시 성장 과정이 그렇듯 한 가지 전략만으로 성장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10여 년 전 시작된 양양의 체류 인구 증가는 이제 한계에 부닥쳤다. 해변 젠트리피케이션, 해변과 산촌의 격차, 양양 출신 청년의 탈출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과거 10년의 성공 공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이번 조사를 진행한 포스텍 배영 교수는 “양양은 지금까지 기획을 통해 살펴본 다른 여러 지역에 비해 청년들에게 분명한 매력을 제공하는 곳이다. 천혜의 자연과 양호한 지리적 접근성과 함께 점점 더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욕구를 만족시킬 요소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이제는 이런 차별적 매력에만 만족하지 말고, 방문객이 정착할 결심을 할 수 있도록 일상 속 안심과 만족을 제공하기 위한 기반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료 정리: 정지송(포스텍 첨단원자력공학부 박사과정) 전종석(포스텍 소셜데이터사이언스 전공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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