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례·고용부 행정해석 변경되면서
'하루 최대 21.5시간' 몰아서 일하기 허용
병원 등 교대제, 방송·영화·IT 악영향 우려
"11시간 연속휴식권 등 건강권 보호해야"
"드라마 업계는 초장시간 노동 문제가 굉장히 심각해요. 영화는 12시간 촬영·12시간 휴식 관행이 그래도 정착 중인데, 드라마는 '잠을 안 재운다' '촬영을 멈춰달라'며 새벽 2시에 연락을 받은 적도 있어요. 지난해 대법원 판결과 정부 행정해석 변경으로 연장근로시간 판단 기준이 바뀌면서 방송 현장에도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가 큽니다."(방송 비정규직 단체 엔딩크레딧 진재연 집행위원장)
정부는 올해부터 '합법적 연장근로' 판단 기준을 바꿨다. 기존에는 '하루 8시간 초과 근로시간'을 전부 더해 일주일에 12시간을 넘기면 안 됐는데, 이제는 주중 52시간 이하로만 일하면 문제가 없다. '하루 21.5시간 노동'까지 법적으로 허용되면서, 노동계 안팎에서는 초장시간 집중 노동을 제한하기 위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1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12월 7일 대법원은 주 52시간(소정근로시간 40시간+연장근로시간 12시간) 준수 여부를 따질 때 '하루'가 아닌 '일주일' 단위로 계산하는 게 맞다는 판례를 내놨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도 지난달 22일 연장근로에 대한 행정해석을 '1일 법정근로시간 8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에서 '1주 법정근로시간 40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으로 바꾸었다.
예를 들어, 월·수·금 각각 14시간씩 일하는 노동자가 있다고 해보자. 하루 단위로 계산하던 과거 기준에 따르면 연장근로가 하루 6시간, 3일간 총 18시간이므로 '주 12시간 한도'를 위반한 게 된다. 반면 바뀐 주 단위 기준으로 보면 총 근로시간은 42시간, 연장근로는 2시간이므로 문제가 없다. 쉽게 말해, 압축적으로 몰아서 일해도 주 52시간 이내기만 하면 합법인 것이다.
"정부가 '집중 노동'의 시대를 선언했다"는 노동계 반발이 나온 까닭이다. 민주노총은 "많은 산업재해가 장시간 노동을 원인으로 한다"며 "(행정해석 변경으로)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하루 최대 21.5시간을 일하고도 연장노동을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4시간 근로마다 30분 휴게시간 부여가 의무인 것을 제외하고는, '건강권 보호 장치'가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경비·병원 등 장시간 연속 작업을 위한 교대제 직종이나, 방송·영화·IT개발 등 장시간 노동이 문제 된 업종은 우려가 더 크다. 김기영 공공운수노조 방송스태프지부 지부장은 "기존에도 주 60~70시간 일해도 촬영 현장 이동시간을 빼고 계산해 주 52시간을 지켰다고 눈 가리고 아웅 하거나, 고용노동부가 연장근로 위반 공문을 보내도 제작사가 무시하기가 부지기수였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대법원 판결까지 나오면서 완전한 면죄부가 생긴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노동계는 하루 연장근로 시간 상한 마련 등을 요구 중이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 1일 '1일 단위 연장근로 제한에 대한 입법 논의 필요성' 보고서에서 "장시간·집중 근로가 문제 돼 온 상황을 고려할 때 1일 단위 연장근로 상한 규제의 부재는 곧바로 건강권에 대한 실질적인 침해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며 입법 필요성을 강조했다. 보고서는 △1일 단위 연장근로 상한(3시간·4시간 등) 명시적 설정 △기존 산식(1일 8시간 초과분을 합산해 주 12시간 이내) 입법화 △11시간 연속휴식제도 도입 등을 가능한 대안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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