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사회적 불법대부계약 무효화 시도
판례 만들면 앞으로도 피해구제 쉬워져
불법사금융 경제적 유인 원천차단 목적
A씨는 지난해 1월 인터넷 대출 카페를 통해 한 대출업체로부터 급전을 빌렸다. 업체는 A씨의 상환능력을 확인하겠다며 20만 원을 빌려주며 일주일 뒤 40만 원으로 갚으라고(연이율 4,562%) 요구했다. 돈이 필요했던 A씨는 이 대출을 이용했는데, 그 과정에서 업체는 A씨에게 조부모와 부모, 직장 동료, 친구 등 11명의 연락처와 카카오톡 프로필 캡처사진, 친척·지인 등 9명의 인스타그램 계정까지 요구했다. A씨는 자필 차용증을 들고 찍은 사진까지 보내야 했다.
수차례 소액을 빌려주고 받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A씨는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하게 됐다. 대출업체는 A씨에게 "나체 사진을 전송하겠다"고 협박했는데, 해당 사진은 A씨가 과거 다른 대출업체에 보낸 사진으로 불법 업체끼리 텔레그램을 통해 공유하고 있던 사진이었다. 수차례 협박 끝에 업체는 나체 사진을 A씨 아버지와 친구, 지인 등 9명에게 보냈고, A씨의 일상은 파괴됐다.
금융감독원은 이 같은 불법 대부계약으로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반사회적 대부계약 무효소송' 지원 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고 6일 밝혔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을 약탈하는 불법사금융을 처단하고 불법이익을 박탈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새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금감원이 소송 지원할 사례를 선별하면 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가 계약 무효소송을 진행하고, 금감원은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다.
이번 소송은 단순히 손해배상을 받아내는 것을 넘어 계약 자체를 무효화하는 데 의의가 있다.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를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금감원은 채무자 생존을 위협하는 수준의 반사회적 대부계약에 이를 적용하면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특히 성착취 추심은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등 실정법 위반일 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신용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중대 범죄로 봤다.
금감원 관계자는 "그간 법정이율(20%) 초과 이자 무효화 판결은 많았지만, 대부계약 자체를 무효로 하는 판례는 없었다"며 "이번 소송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피해자는 법정이율 초과 이자뿐 아니라 그간 납입한 원금도 돌려받을 수 있게 돼 피해자의 금전적·정신적 피해에 대한 실질적 구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먼저 2건의 사례로 소송을 시작해 무효 가능성이 높은 불법대부계약 사례를 추가로 발굴해 나갈 예정이다. 연내 무효소송 10건까지 지원하는 목표도 밝혔다. 금감원 측은 "금융소비자도 대출 시 주소록, 사진파일 등을 요구받으면 상담을 중단하고 절대 응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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