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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세 땜에 전세금 못 줘" 버티던 불량 집주인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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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세 땜에 전세금 못 줘" 버티던 불량 집주인의 최후

입력
2024.02.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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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관 특례로 산 집 3배 뛰었는데
법대로 하라며 전세금 안 준 황당 집주인
지연이자 12%·법률 비용까지 물었다

4일 오전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에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있다. 뉴스1

4일 오전 서울 중구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에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있다. 뉴스1

최근 전세 대신 월세를 택하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전세사기, 역전세 등 전세 거래 자체가 위험해졌기 때문입니다. 거액의 전세금 못 받을까 봐 전전긍긍하느니 차라리 월세살이를 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거죠.

실제 지난해 전세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해 법원(임차권 등기명령 신청)을 찾은 세입자가 역대 최고(4만5,455건)로 많았던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세입자로선 최후의 수단을 택한 셈이지만 사실 적잖은 마음고생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역전세로 전세금 반환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던 지난해 7월 부산에 사는 세입자 A씨 사례를 기사로 다룬 적이 있습니다. 역전세를 당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할 처지에 놓인 집주인이 법적대응을 예고한 세입자를 향해 되레 "그렇게 해보라"며 갖가지 꼼수를 동원한 집주인의 행태가 비상식적이었습니다. 지난해 전세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한 대부분의 세입자들이 사연의 주인공과 비슷한 경험을 했을 거라 여겨집니다.

이 사연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세입자 A씨가 KO승을 거뒀습니다. 돈을 받기까지 7개월이 걸렸습니다. 승리를 따냈지만 A씨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일단 전출 신고 해주세요" 황당 요구 집주인

사진은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 연합뉴스

사진은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 연합뉴스

사연은 지난해 3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세계약 만료 3개월을 앞두고 A씨는 집주인 B씨에게 시세에 맞춰 전세금 일부(1억5,000만 원)를 돌려주면 계약을 연장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A씨는 2년 전 전셋값이 고점일 때 계약했는데, 계약 만기를 앞둔 당시엔 전셋값이 폭락하면서 시세가 전세보증금을 한참 밑돌았기 때문이죠.

A씨 제안에 집주인 B씨는 다소 황당한 요구를 합니다.

"제가 공공기관 다녀서 신분이 확실해요. 잠깐 전출 신고만 해 주시면 은행에서 대출받아 시세 내려간 만큼 전세금 내드릴게요."

은행에서 선순위 대출을 받아 전세금 일부를 내준다는 취지였죠. A씨는 바로 거절했습니다. 전출 신고를 하는 순간 전세금을 받을 권리가 후순위로 밀려 대항력(전셋집에 대한 임차인의 법적 권리) 상실이 우려됐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집을 팔아 전세금을 내달라고 하자 집주인은 "양도세가 많이 나와 팔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집주인은 갭투자자였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본보가 취재했더니 해당 아파트는 공공기관 직원인 B씨가 2012년 5월 분양(이듬해 9월 등기) 받은 아파트였습니다. 부산 소재 대단지로 정부가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특례 분양한 첫 아파트였죠. 그 상징성을 고려해 분양가는 원가 수준으로 책정됐는데요. 당시에도 이를 악용해 곧바로 집을 되팔아 차익을 챙긴 사례가 알려져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B씨는 이 아파트(전용면적 84㎡)를 2억9,000만 원 안팎에 매입한 걸로 추정됩니다. 집값 급등기였던 2021년 최고 11억 원을 찍은 시세가 지난해 3월 기준 8억 원대 중반으로 떨어진 걸 감안해도 집값이 3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1주택자는 특례 적용을 받아 집값 12억 원까지는 양도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데, B씨는 왜 양도세를 운운했을까요.

여러 자료를 참고했더니 B씨가 이 아파트에 실제 산 기록은 없었습니다. 등기부등본 등을 더 분석하니, B씨는 2014년과 2016년에 오피스텔과 전용 84㎡ 아파트를 추가로 사들여 3주택자가 됐습니다. 전셋값이 뛰기 시작한 2010년부터 갭투자가 번져 2015년 전후 전국적 광풍으로 번진 걸 고려하면 B씨 역시 갭투자에 뛰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2020년부터 사택에 살게 된 B씨는 보유 중인 3주택 모두 세를 줬습니다. 그해 세 번째로 산 아파트를 담보로 신협에서 돈을 빌려 등기에 8억4,000만 원의 근저당이 잡힌 것으로 확인됩니다. 주택 시세만큼 꽉 채워 돈을 빌린 거라 신협 대출은 주택 구입 용도로 추정되는데, 집값 급등 시기에 마지막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에 나서 집을 한 채 더 산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지난해 초부터 집값과 전셋값이 동시에 폭락하자 B씨 역시 타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다주택자라 양도세도 만만찮고요. 지금 집을 팔면 외려 손해라는 계산이 서자 시세가 회복될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한다고 판단한 걸로 보입니다.

세입자의 대대적 반격

A씨가 법적 조치를 예고했음에도 B씨는 계약 만료일에도 전세금 6억 원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강제집행까지 최소 3년은 걸리는데 그 힘든 길을 가겠느냐"는 B씨를 상대로 A씨는 곧바로 전세금반환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소송 과정에서 A씨는 B씨가 계약 만료 한 달 전 부인에게 해당 아파트 소유권을 '신탁' 방식으로 넘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증여가 아니라 부인에게 임대인 지위만 승계한 것입니다.

A씨는 당황했습니다. 소송 대상이 부인으로 바뀐 터라 B씨의 월급 압류와 같은 법적 조치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죠. 법조계에선 B씨가 아파트에 대한 법적 권리를 복잡하게 만들어 법원의 강제집행을 늦추려고 이런 꼼수를 동원한 것이라 해석했습니다. B씨는 이때만 해도 소송이 마무리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최대한 시간을 끌어 본인이 감당해야 할 투자 손실을 줄이려 했던 걸로 보입니다.

그러던 중 A씨 변호인이 묘안을 냈습니다. 부부는 공동생활과 관련한 경우 연대해 해당 행위를 책임지도록 규정한 민법 832조(일상의 가사에 관한 법률)를 활용하기로 한 거죠. "소송 중 사실조회 요청 등으로 계좌 사용내역을 조회해 저의 전세금을 공동으로 쓴 증거를 찾으면 둘 다 옭아맬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A씨는 B씨 자산 내역을 조회하던 중 부부 공동 명의로 된 오피스텔을 찾았고, 이 오피스텔 등기부등본을 확인했더니 A씨가 준 전세금으로 부동산 대출금을 갚은 증거도 찾아냈습니다. 법원에 B씨 부인 상대로 임차권 등기명령을 신청했고 바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임차권 등기 명령은 법원 명령에 따라 해당 부동산 등기에 세입자가 보증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임차권)를 기록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후 A씨는 전세사기피해자 모임을 찾아가 각종 노하우와 법적 지식을 습득했다고 합니다.

B씨가 다니는 공공기관에도 민원을 넣었습니다. 다만 해당 기관은 품위 유지 조항은 있지만 처벌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소송을 건 지 한 달 뒤 법원은 조정절차를 시작했습니다. 재판에 앞서 서로 합의를 보라는 취지였죠. 집주인도 변호사를 선임해 "일시적 경제적 곤궁으로 전세금을 못 돌려주고 있지만 반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내용의 답변서를 냈습니다.

다행히 첫 조정에서 B씨 변호인이 A씨 측 요구를 수용하기로 해 무사히 끝나는 듯했지만, 돌발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법원 조정위원이 조서에 실수로 B씨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시 지연이자를 물어야 한다는 내용을 빠뜨린 겁니다. 이렇게 되면 B씨가 이를 악용해 경매가기 전까지 고의로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A씨는 이에 따른 지연이자를 한 푼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A씨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를 되돌리기 위한 소송을 걸었고, 곧바로 같은 단지 월세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그리고 B씨 부부에게 집을 비웠다는 명도 통지를 했습니다. 소송을 건 지 3개월이 된 시점이었습니다. 법적으로 이날부터 A씨는 B씨 부부에게 보증금의 12%를 지연이자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임차권 등기 이후 집을 임대인에게 명도하면 소송 소장이 집주인에게 전달된 날부터 보증금의 12%를 지연이자로 받을 수 있습니다. B씨의 경우 매일 20만 원씩 물어야 하는 셈이죠. A씨는 그간 익힌 법적 지식을 바탕으로 B씨 부인의 다른 명의 아파트에 가압류까지 걸었습니다. 변호인은 과잉압류로 거절될 수 있다고 했지만, 법원은 이를 승인해줬습니다.

압박을 느낀 B씨는 변호인을 통해 A씨에게 합의를 요청했죠. 하지만 이때도 강화마루 교체 비용 등으로 650만 원 수준의 수리 견적서를 보내며 이를 지연이자와 상계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알고 봤더니 인테리어 사장에게 받은 신규 설치 견적서를 하자보수 견적서로 바꾼 것이었습니다.

A씨는 이런 증거자료를 바탕으로 법원에 B씨의 주장을 모두 배척해달라는 서면을 제출했습니다. 올해 1월 8일 선고기일을 앞두고 B씨는 패소를 예감했는지, A씨와 그의 부인에게 줄기차게 전화해 합의를 종용했습니다. 합의 끝에 B씨는 지연이자 12%, 법률 비용, 전세금 원금을 모두 내놓기로 했고, 1월 8일 모든 비용을 A씨에게 보냈습니다. A씨는 소송을 취하해 줬습니다. 여기까지 7개월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A씨는 이겼음에도 허탈했다고 합니다. "어차피 이렇게 끝난 일인데 집주인은 자기 손해 안 보겠다고 7개월 동안 우리 가족을 지옥 속에서 살게 한 걸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특례 공급을 악용한 B씨만의 도덕적 해이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입니다. 이런 사례가 적잖을 거란 얘깁니다. 세입자가 분명 피해자인데도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받는 과정이 이처럼 쉽지 않습니다.

최근 전세사기가 사회 문제로 떠오른 만큼 B씨처럼 고의로 전세금을 내주지 않는 집주인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김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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