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건강기능식품 거래 활발하지만
현행법 저촉... 현실 맞게 법규정 바꿔야
정부 "지침 마련"... 신중한 접근 요구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경기 고양시에 사는 이모(56)씨는 올해 설에도 선물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홍삼 같은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이 많이 들어왔지만 그다지 즐기는 음식이 아니어서 홍삼즙 두 박스가 처치 곤란으로 남아 있다.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을 활용해 팔아볼까도 고민했으나 법 규정에 가로막혀 이마저도 포기했다. 이씨는 "선물을 나눠주고 싶어도 원하는 사람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설 연휴를 맞아 건기식 온라인 중고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 간 건기식 거래는 엄연한 불법이다. 시대 흐름에 맞게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건강 위협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식품 거래 속성 탓에 정부도 법 개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9일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서울 용산구 원효로를 거래 지역으로 설정해 '설 선물'을 검색한 결과, 약 170개의 판매 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캔 식품, 화장품 등을 판매하는 글도 있었지만, 70% 이상이 홍삼, 흑염소진액, 산삼배양근 같은 건기식이었다. 1만 원대 저가 상품부터 20만 원 상당의 고가 건기식까지 가격대도 다양했다. 수요가 많은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파는, 이른바 '명절테크(명절+재테크)'를 노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거래는 활발해도 온라인 건기식 매매는 주의해야 한다. 건강기능식품법 6조 2항에 따르면, 법적으로 등록된 건강기능식품판매업자만 건기식을 판매할 수 있다. 판매업을 하려면 관련 시설을 갖추고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영업 신고도 해야 한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개인 간 거래는 불법이라는 얘기다. 적발되면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는 등 처벌 수위도 꽤 높다.
음식을 다루는 제작 과정이 엄격한 만큼 취지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시민들은 법 규정이 너무 경직돼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당근마켓을 자주 애용하는 이모(66)씨는 "어차피 먹지도 않는 홍삼을 판매하는 게 그렇게 위험한지 의문"이라며 "건기식은 유통기한도 길어 변질 가능성도 낮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모(23)씨도 "온라인 중고거래가 일상이 된 시대에 건기식만 규제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면서 "사정이 이러니 시민들도 (규정을) 잘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수년간 민원이 제기되자 정부는 규정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도 지난달 "건강기능식품 관련 규정을 개인 소규모 판매에까지 적용하는 건 법적 근거가 불명확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거래 횟수, 금액 등 세부 허용 기준 마련 △일탈 행위 감시·차단 방안 마련 △시범사업 후 시행 결과 분석 및 추가적인 의료 수렴 등을 주문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1분기까지 안전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4월부터 시범사업에 들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익명 거래가 대다수인 온라인 플랫폼에서 건기식 거래 허용은 자칫 소비자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줄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소비기한이 명시돼 있어도 판매자는 거의 비전문가라 보관 적정 온도 등을 지키지 않는 등 상한 식품이 거래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