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초기부터 '새우가 고래 삼키는 꼴' 비판
중견기업 하림의 자금력 우려 끝내 발목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 매각 협상이 6일 최종 결렬되면서 산업은행이 고심에 빠졌다. 최근 해운 업황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산업은행이 HMM을 제값을 받으면서도 자금 여력이 충분한 기업에 매각할 수 있을지 우려가 나오고 있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HMM의 채권단인 산은·해양진흥공사가 팬오션·JKL컨소시엄(하림 컨소시엄)과 지난해 말부터 진행한 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은 결국 지속적으로 지적됐던 하림의 부족한 자금력이었다.
앞서 하림 컨소시엄은 지난해 12월 진행된 HMM 지분 57.9% 인수전에 6조4,000억 원을 제시해 동원그룹을 제치고 우선협상대상자가 됐다. 하림그룹은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 집계 기준 자산 17조 원으로 재계 27위였던 데 반해 HMM은 자산 25조8,000억 원으로 재계 19위라는 점에서 하림 컨소시엄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꼴', '승자의 저주' 등의 우려가 제기됐다.
경영 참여, 사모펀드 엑시트 등 이견 못 좁혀
협상 과정에서 채권단은 계약 조건으로 ①HMM의 현금 배당 제한 ②일정 기간 지분 매각 금지 ③정부 측 사외이사 지명 권한 등을 제시하면서 지분 매각 이후에도 HMM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HMM이 국가 해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중견기업인 하림에만 맡길 순 없다는 인식이었다. 이에 반해 하림 측은 지분 매각 계약의 유효기간을 5년으로 제한해 줄 것을 요구했다. 또 투자금을 단기간에 회수해야 하는 사모펀드인 JKL파트너스의 입장을 고려해 달라며 지분 매각 제한 기간을 3년으로 줄여달라는 입장도 전달했다.
산은과 해진공이 갖고 있는 1조6,800억 원 규모의 HMM 잔여 영구채도 문제가 됐다. 두 기관은 내년까지 이를 주식으로 전환한다는 계획인데, 그럴 경우 하림 컨소시엄이 인수한 HMM 지분 가치는 57.9%에서 38.9%로 희석된다. 반면 두 기관의 지분은 32.8%로 하림 컨소시엄을 위협할 존재로 남게 된다. 이에 하림 측은 주식 전환을 3년간 유예해 줄 것을 요구했다.
6일 밤 협상 막바지까지 하림 측은 대부분의 요구 사항을 철회하면서도 JKL파트너스 지분 매각 제한 건은 고수하면서 최종 결렬된 것으로 전해진다. 하림은 JKL파트너스와의 컨소시엄을 해제하고 단독으로 인수하겠다는 뜻도 내비쳤지만, JKL파트너스가 투입한 6,000억 원의 자금을 단기간에 마련할 방안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HMM 새 주인 찾기 난항 예상
협상 결렬로 HMM 매각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산은 등 채권단 관리체제로 당분간 유지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산은도 재무적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HMM의 주가가 계속 하락하면서 산은의 지난해 3분기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13.66%까지 떨어졌다. BIS 비율은 은행의 재무건전성을 평가하는 지표로, 금융당국은 은행의 건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BIS 비율을 13% 이상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결국 새 인수자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본입찰 과정에서 하림 컨소시엄보다 2,000억 원 적은 6조2,000억 원을 제시한 동원이 재입찰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다만 중동 분쟁을 위시로 지정학적 문제 등 해운 업황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HMM의 제값 받기와 새로운 인수자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하림이 국제 정세나 해운 동맹 재편 등 이슈에 대응하기 위한 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만큼 산은이 상당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며 "다만 불황에 돌입하는 시점에서 산은이 원하는 가격에 새 주인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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