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기후행동]
친환경 실천에 포인트 주는 '기후행동 보상제'
1회 감축량 미미, 통계 반영도 안 되지만
국민 습관·인식 전환이 핵심
편집자주
기후위기가 심각한 건 알겠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일상 속 친환경 행동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요? 열받은 지구를 식힐 효과적인 솔루션을 찾는 당신을 위해 바로 실천 가능한 기후행동을 엄선해 소개합니다.
'입금 4,600원.'
늘 '출금' 메시지만 보이던 은행 앱에 반가운 알림이 떴습니다. 메마른 통장에 내린 단비는 바로 '탄소중립실천포인트'입니다. 일회용컵 대신 텀블러에 커피를 받고, 마라탕을 먹을 때 다회용기 배달을 이용했던 게 하나둘 쌓여 현금으로 돌아온 겁니다.
환경부가 2022년부터 운영 중인 탄소중립실천포인트는 온실가스 감축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반복하면 회당 100~2,000원, 최대 7만 원을 지급하는 제도입니다. 텀블러를 쓰거나 친환경제품을 구매하는 등 10가지 실천에 포인트를 주고 있죠.
사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친환경을 실천하려 해도 불편하거나 귀찮을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꼭 필요한 실천을 장려하기 위해 이 제도가 태어났습니다. 한 번 실천할 때마다 소소한 인센티브를 지급해 뿌듯함을 더하는 거죠.
시민들의 호응도 높습니다. 첫해 가입자는 26만 명이었지만 꾸준히 늘어 현재는 120만 명 넘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지급된 포인트는 금액으로 79억 원 이상입니다. 항목별로 적게는 1만 회에서 많게는 약 3,000만 회를 실천한 셈이에요.
이런 '기후행동보상제'는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서울 도봉구가 시작한 '탄소공감마일리지'가 대표적입니다. 도봉구에서는 무려 47가지 실천에 보상을 지급합니다. 장바구니와 대중교통 이용 등은 물론이고 형광등을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바꾸거나 가정용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해도 마일리지가 쌓입니다.
마일리지는 최대 8만 원 상당의 도봉사랑상품권으로 바꿀 수 있어요. 지난달 15일까지 5,209명이 가입해 총 22만 건을 실천했습니다. 이종형 도봉구 기후환경과장은 "구민들에게 '탄소중립을 실천하자'는 구호만 외치지 않고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기 위해 제도를 고안했다"고 말합니다.
친환경 실천 뿌듯하긴 한데...티끌 모아 탄소중립 가능할까
기후행동 보상은 깐깐한 인증을 통과해야 합니다. 탄소중립실천포인트는 친환경제품 구매 영수증이나 무공해차 대여 기록 등 증빙이 있어야 쌓을 수 있죠. 스타벅스와 이마트 등 67개 참여 기업에서 가입자의 실천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합니다. 탄소공감마일리지는 참여자가 매번 인증사진을 올리면 구에서 직접 확인해 보상을 지급합니다.
그런데 다회용컵 한 번 쓴다고 정말 탄소배출량이 줄어들까요. 이런 의문이 들겠지만 이론상으로는 그렇습니다. 탄소중립실천포인트는 감축 효과를 제법 명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행동들만 선별했거든요.
예를 들어 일회용 종이컵에 커피를 마시면 폐기 과정에서 개당 약 6.86g의 온실가스가 배출되지만 텀블러를 쓰면 그만큼을 감축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잔반 줄이기는 예전보다 음식물 쓰레기가 줄었는지를 확인하기 어려워 항목에 넣지 않는다는 게 환경부의 설명입니다.
그럼에도 '티끌 모아 태산'이 가능할지 의구심은 여전합니다. 탄소중립 실천으로 줄어드는 온실가스가 워낙 적으니까요. 다회용기 배달 한 번으로 45.8g, 폐휴대폰 반납 시 57.8g이 감축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반면 2022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무려 6억5,450만 톤이었죠.
기후행동 '루틴' 생겨야 탈탄소 전환 가속도
사실 탄소중립실천포인트의 진짜 목적은 감축이 아닙니다. 참여자들의 실천 성과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량에 반영되지도 않습니다. 조금은 줄어들겠지만 모든 사람들의 행동 효과를 정확히 측정하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사람들의 습관과 인식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제도의 핵심입니다. 김지수 환경부 기후적응과장은 "화력발전이나 기업활동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에 비하면 일상생활의 배출량은 미미하지만 탄소중립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커져야 산업 부문의 전환에도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매일의 습관을 통해 인식이 바뀌면 결국 사회 전반에 탄소중립이라는 가치가 녹아들 거란 얘기입니다.
효과는 조금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탄소공감마일리지에 참여하고 있는 주부 최현주(45)씨는 "마일리지를 쌓기 위해 매일 사진 인증을 하다 보니 하루에 최소 한 번은 환경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며 "마일리지를 받으려고 시작했지만 이제는 더 비싸더라도 친환경제품에 먼저 손이 간다"고 합니다.
남은 과제는 보상 없이도 실천이 지속되는 겁니다. 계속 공공 예산으로 포인트를 지급할 수는 없으니까요. 환경부의 탄소중립실천포인트 예산은 지난해 89억 원, 올해 147억7,000만 원입니다. 보상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어 올해는 참여도에 따라 포인트를 조정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참여도가 낮았던 세제 리필 등 리필스테이션 이용과 배달 다회용기 이용 포인트는 높이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참여 중인 전자영수증 발급은 포인트를 줄일 예정입니다.
보상 없이도 실천이 장기화되려면 참여자들이 경험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천일기 같은 '인증'을 하거나, 더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을 공유할 수 있는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거죠. 김남수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이사는 "도봉구 제도에서는 시민 기후행동 활동가 양성 교육에 참여하면 마일리지를 받는다"며 "이처럼 온실가스를 직접 감축하지 않는 행동이라도 공동체 의식을 촉진하고 탄소중립 문화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시도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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