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막장' 즐기는 해외 시청자들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이이경 SNS에 'Gwenchana' 줄줄이
"'중남미 막장' 텔레노벨라보다 '순한 맛'" 입소문
'Gwenchana(괜찮아)'. 배우 이이경이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폭탄주'를 만드는 장면을 찍은 영상을 지난 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자 영어로 이런 댓글이 굴비 엮이듯 이어졌다. 무슨 뜻일까. 해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아마존프라임을 통해 이 드라마를 스페인과 나이지리아에서 각각 본 두 외국인 시청자는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이이경이 위기에 처했을 때 그가 '으라차차 와이키키'(2018)에서 '괜찮아, 괜찮아'란 말을 자주 하는 코믹한 모습이 떠올라 웃음도 나고 (연기) 응원도 하고 싶어" 그의 SNS에 'Gwenchana'란 댓글을 달았다고 했다. 지난달 1일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처음 공개된 뒤 이이경이 최근 한 달 새 SNS에 올린 글엔 이렇게 외국인들이 단 'Gwenchana'란 응원 댓글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드라마에서 이이경은 아내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직장 동료인 정수민(송하윤)과 바람을 피운 뒤 그의 아내를 살해하는 박민환을 연기한다. 패륜에 '욕'하고 보면서도 드라마에서 죽고 환생한 아내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이이경을 외국 시청자들이 '괜찮아'란 댓글놀이로 다독이며 'K막장 캐릭터'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한류스타보다 'K막장'
한국 드라마 속 불륜남에 빠진 외국 시청자들이라니. "이이경이 드라마에서 아내 지원(박민영)에게 당하는 모습을 과장되게 연기하며 권선징악 측면에서 시청자들에게 속시원함을 안겨주고"(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그가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 등 여러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이 '내 남편과 결혼해줘' 속 찌질한 불륜남 캐릭터와 시너지를 내면서"(공희정 드라마평론가) 막장 캐릭터에 대한 몰입을 키웠다는 평가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요즘 해외에서 인기다. 글로벌 OTT 시청 시간을 집계하는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아마존프라임 TV쇼(시리즈) 부문에서 올해 공개된 콘텐츠 중 두 번째(2월 11일 집계 기준)로 높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가장 최근 방송인 12회가 공개된 6일엔 브라질, 홍콩, 일본, 쿠웨이트, 멕시코, 파라과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39개국에서 1위에 올랐다. 고등학교 졸업 후 동창회에 10년 넘게 발길을 뚝 끊은 동창이 갑자기 나타나 궁지에 물린 여주인공을 도와주는 한국의 '막장 드라마'를 실시간으로 즐기고 있는 셈이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엔 드라마 '흥행 보증 수표'로 통하는 한류 청춘스타가 단 한 명도 출연하지 않는다. 동명 원작 웹소설이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김치 싸대기'가 난무하는 아침·주말드라마의 불륜 복수극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우려 속에 공개 전 큰 기대를 받지도 못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10~30대가 주로 쓰는 해외 OTT에서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주목받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①'오징어 게임'(2021) 흥행 후 글로벌 OTT를 통한 다양한 한국 드라마 노출과 추천이 해외 시청자와 K콘텐츠와의 접점을 넓혀줬고 ②복수, 치정 등 통속적인 소재를 극단적으로 다뤄 '중남미의 막장 드라마'로 불리는 텔레노벨라보다 한국 막장 드라마가 상대적으로 개연성을 갖췄고 덜 자극적이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특수를 누렸다.
K팝? 애창곡은 'K막장' 주제곡
K드라마 팬들 사이 한국의 막장 드라마는 하나의 장르로 인기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 푹 빠진 나이지리아인 라지 오모볼라지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텔레노벨라에선 첫 회부터 격정적으로 키스하는 장면 등이 나와 등장인물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며 "반대로 한국의 막장드라마는 상대적으로 등장인물들의 감정이 쌓이는 것을 볼 수 있어 즐겨 본다"고 말했다. 미국 팝스타 비욘세의 '마이 파워' 안무를 짠 프랑스 출신 안무가 카니가 한국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는 노래는 막장 드라마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아내의 유혹'(2008) 주제곡 '용서 못 해'다. 카니가 지난달 15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K팝 아이돌그룹 샤이니 멤버 키와 함께 '내 남자의 여자'(2007)를 보는 에피소드가 화제를 모으면서 국내 OTT인 웨이브에선 '내 남자의 여자'와 '아내의 유혹' 시청 시간이 최대 330%(1월 15일~2월 4일 기준, 전년 동기 대비)까지 상승했다. 10~20대 시청자들이 15년 전 나온 막장 드라마를 찾아본 영향으로 보인다. K팝 해외 팬덤(카니)이 쏘아 올린 한국 막장 드라마에 대한 열광이 국내 역소비로 이어진 것이다.
롤링스톤 인도는 지난해 '막장 K드라마를 왜 우리는 사랑하는가'란 제목의 기사를 내 해외에서의 한국 막장 드라마의 인기 요인을 집중 분석했다. 그렇다고 'K막장의 세계화'를 마냥 반기기도 어렵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내용보다 개연성의 상실이 막장 드라마의 더 큰 문제"라며 "K드라마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고민해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