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의 한 장면. 중립을 지켜야 하는 판사는 건조한 판결문을 쓴다. 그 판결문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https://newsimg-hams.hankookilbo.com/2024/02/14/f0bb4ee1-46d6-4b68-bc67-dfe80d287b10.png)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의 한 장면. 중립을 지켜야 하는 판사는 건조한 판결문을 쓴다. 그 판결문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일명 '점점점 판결문'이라 한다. 법정은 나의 선의와 상대의 악의를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장소다. 그래서 판결문은 대개 '~라는 점, ~라는 점, ~라는 점에 비춰볼 때 이렇게 결론 내리는 게 맞다'는 형식이다.
복잡한 사건일수록 '점점점'은 한정 없이 길어진다. 그 때문에 딱딱하고 어렵다고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치열한 싸움이니 판사는 감정을 숨겨야 한다. 감정 자체가 일종의 '편향 시그널'로 읽힐 수 있다. 판사들이 '그래도 제일 정확한 건 점점점 판결문'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을 쓴 손호영 대법원 재판연구관. 동아시아 제공](https://newsimg-hams.hankookilbo.com/2024/02/14/8b943e50-ae6c-41c6-9d55-85d18460bc45.jpg)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을 쓴 손호영 대법원 재판연구관. 동아시아 제공
현직 대법원 재판연구관인 손호영 판사가 법정 안팎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낸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은 좀 더 다르게, 그러니까 좀 더 쉽게 쓰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지 리드(easy read) 판결문 사례는 그 때문에 와닿는다. 지난해 청각장애인에게 '안타깝지만 원고가 졌습니다'라고 쓴 판결문이 나왔다. 청각장애인은 수화를 통해 재판을 이해해야 한다. 복잡한 법정 용어 때문에 더 힘들었던지, 쉬운 말로 해달라 요청했다. 판사가 이를 받아들였다. '원고 패소'라는 말을 풀어썼을 뿐 아니라, 판결문에 아예 '쉬운 말로 요약한 판결문의 내용'이란 부분을 새로 만들었다. 그림까지 그려가며 판단 이유를 설명했다.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손호영 지음·동아시아 발행·240쪽·1만6,800원](https://newsimg-hams.hankookilbo.com/2024/02/14/53fa7c06-22ab-4994-a34d-0c14c5a81778.jpg)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손호영 지음·동아시아 발행·240쪽·1만6,800원
이지 리드란 문해력이 낮은 이들을 위해 쉽게 쓰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진이나 그림 같은 것도 넣어 설명한 문서를 의미한다. 이 사례를 계기로 법원도 이지 리드 판결문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했다. 저자의 말처럼 판결이 설득을 위한 것이라면, 당사자들을 이해시키는 건 필수다. 진작에 시작됐어야 할 고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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