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신인 작가 소설집 출간
전하영 ‘시차와 시대착오’
이선진 ‘밤의 반만이라도’
'경계 밖의 여성들'을 그린 신인 작가 두 명의 첫 소설집이 나란히 나왔다. 2021년과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전하영(44) 작가의 ‘시차와 시대착오’와 2020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자인 이선진(29) 작가의 ‘밤의 반만이라도’다.
제대로 된 직업도 없고 비혼 혹은 퀴어여서 출산·육아라는 “사회적 의무와도 같은 선택지”를 받아 들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다. 언뜻 시대와 불화하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누구보다 시대와 조응하는 여성들이기도 하다.
‘예술이라는 노동’ 하는 여성 그린 작가, 전하영
전 작가의 ‘시차와 시대착오’ 속 여성들은 영화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쓰고 그림을 그리지만, 이들의 삶은 낭만이나 서정, ‘진정한 예술가’라는 환상과는 거리가 멀다. 표제작의 주인공 미루는 해외에서 예술을 공부했지만 갤러리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한다.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첫째 아이가 아들이었다고 여기며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남자의 딸인 미루는 ‘내가 남자였으면’이라는 상상을 한다. “별 볼 일 없는 인간들이라고 무시했던 소수의 남자 동기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여성 예술가들은 “일정한 직업도 소속도 없이, 언제든 영화 속에서 본 산발의 미친 여자 ‘혐오스런 마츠코’가 될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리며 생계와 생존을 위협받는다. 예술보다 ‘여성’을 먼저 재단하는 편견과도 마주한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30대 비혼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 난희가 한 남성으로부터 “그럼 이제 더 팔 게 없겠네요”라는 비아냥을 듣는 식이다. 이는 여러 단편 영화와 영상 설치 작품을 만든 전 작가가 현실에서 들은 말이기도 하다.
소설집 속 여성 예술가들은 청춘이 종말을 맞고 한계에 이르러 패배감을 곱씹으면서도 ‘자기 인생’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난희 등이 “아주 잘 살아갈 것”이라는, 소설집에 실린 작가의 말이 예언처럼 들리는 건 이 때문이다. 전 작가는 “여성 작가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시대가 되었다지만 여전히 새롭게 발견될 이야기가 무수히 많다. 그 거대한 세계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그려갈 “보이지 않아도 쓰이는 어떤 삶을. 어딘가에 존재하는 질서를. 그 깊고 어두운 세계를” 상상해 본다.
“무서운 채로 살아남는” 퀴어 여성들의 이야기
이 작가의 ‘밤의 반만이라도’에 수록된 8편의 소설엔 모두 퀴어 여성이 등장한다. 이들은 욕망에 자유롭고 활기 넘치는 모습으로는 그려지지 않는다. 80대 유튜버 레즈비언 커플이 된 할머니와 퀴어인 자신에게 내내 부끄러움을 느끼거나(‘망종’), 대학시절 짝사랑 상대의 장례식장에서 “그래도 그때 네가 잘못했어”라고 원망기도 하고(‘나니나기’), 도서관의 여성 동료를 향한 마음을 키운 끝에 결국 “더럽다”고 내뱉는다(‘부나, 나’ ).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불안과 회의, 환멸로 우울과 분노를 오가는 인물들의 목소리는 파격적이거나 적나라하지 않다. 오히려 미지근하다 못해 차갑고, 건조하게 버석거린다. 그럼에도 어딘가 모르게 애틋한 건 이들이 “무섭지만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무서운 채로 살아남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기”(전청림 문학평론가) 때문인 듯하다.
남성인 이 작가는 '일인칭 퀴어 여성 화자'라는, 자신의 상황과 사뭇 다른 인물의 이야기를 하는 까닭을 “나로부터 가장 멀리 떠나고 싶었기 때문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면서 “나와 무관해 보이는 여성 화자가 소설에 등장하는 것 또한 그런 이유일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자신으로부터 먼 인물과 사건을 가져다 써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너무나도 나 자체라는 마음으로 소설을 쓰면 쓸수록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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