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집단사직 후폭풍 현실화]
전공의 떠난 빅 5 병원 곳곳서 혼란
"수술 차질 빚은 암환자 30명 넘어"
20일 파업 돌입 후 수술 축소 운영
"팔이 부러져 응급실로 달려왔는데 무기한 대기하래요. 암 환자라 받아주는 곳도 없는데, 정말 미치겠네요."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의 응급진료센터 앞에서 만난 임모(64)씨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임씨는 손수건과 헝겊으로 간신히 팔을 고정한 채 강원 태백시에서 한달음에 온 터였다. 언뜻 보기에도 팔과 손이 퉁퉁 부어 있었지만, 전공의 파업으로 진료 접수조차 불가했다. 임씨는 "폐암 3기라 동네 병원에서도 안 받아주고 수술받은 이 병원에서만 치료받을 수 있다고 한다. 파업으로 이게 무슨 난리냐"며 울상을 지었다.
이날 신촌세브란스병원은 20일 예고된 '빅5 병원'(서울대, 세브란스, 서울아산, 삼성서울, 서울성모병원) 전공의 전면 파업이 야기할 '의료 대란'의 축소판을 보는 듯했다. 이 병원은 전공의들이 전날부터 업무 중단에 들어가 곳곳에서 차질이 빚어졌다. 외래 환자들은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고, 수술이 계속 취소되면서 암환자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오후 1시 40분쯤 병원 응급실 앞에 대기하던 환자 3명이 눈에 띄었다. 병원 관계자는 이들에게 "현재 남는 침상이 없고 전공의 파업으로 접수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응급실까지 파업하면 어떡하느냐"는 한 환자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그는 주변 대학병원에 이리저리 전화를 돌렸지만, 위급을 다투는 초응급 상황이 아니면 입원할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파업 여파는 진료를 예약한 환자들에게도 미쳤다. 충북 증평군에서 오전 6시 열차 편으로 병원에 온 김모(70)씨는 "일주일 전 코 재건 수술을 받고, 첫 진료를 보러 왔는데 전공의가 없어 코 소독도 해줄 수 없다고 한다"며 한숨 쉬었다. 그는 막힌 코가 불편한 듯 계속 킁킁대거나 훌쩍였다. 김씨는 "진료도 늦어진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오지 말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소아청소년과 등 이 병원 주요과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내고 현장을 떠났다. 세브란스병원 전공의는 600여 명으로 전체 의사의 약 40%를 차지한다. 병원노조 관계자는 "이번 주 잡힌 수술 절반이 취소됐다"며 "진료 일정과 업무 현황을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치료와 수술이 시급한 암환자들도 비상이다. 김성주 사단법인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이날까지 수술이 밀렸거나 피해를 봤다고 연락 온 암환자만 30명이 넘는다"면서 "2020년 전공의 집단행동 때보다 의정 대치가 훨씬 거센 탓에 파업이 오래갈 것 같아 고민"이라고 우려했다.
이튿날 파업에 들어가는 서울성모병원 환자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전남 목포시에서 상경한 조정복(75)씨는 "혈소판 수치가 높아 이곳에서만 처방전을 받을 수 있는데, 집단행동이 시작되면 약을 타지 못할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남편이 항암치료를 받고 있는 장모(60)씨도 "당장 수술이 다음 달 5일인데, 일정이 미뤄질지 몰라 염려된다"고 토로했다.
떠난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전문의 역시 머리를 싸매고 있다. 서울성모병원에서 만난 한 교수는 "아직 과에서 논의 중이지만 의료 공백이 생기면 결국 교수가 근무를 다 메워야 할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병원 관계자는 "전임의나 교수가 당직을 서는 방식으로 추후 조정이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현재 이 병원은 전공의 47명이 사직서를 낸 상태다.
빅5 병원은 수술을 축소할 예정이다. 강남세브란스 병원은 이날 오전 기준 200여 명의 전공의 중 100명 이상이 사직서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국립암센터도 20일 오전 7시부터 기존 550개의 병상을 530개로, 하루에 15개 수술실을 10, 11개로 줄여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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