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2년, 비극과 모순]
1신-갈 곳 없어진 우크라이나 난민
러시아 침공 후 흩어진 난민 644만
편집자주
전쟁은 슬픔과 분노를 낳았다. 길어진 전쟁은 고민과 갈등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년, 우크라이나와 이웃국가의 삶과 변화를 들여다봤다.
"하르키우에 아빠가 살아요. 닷새 전 러시아 공격으로 7명이 사망한 곳이요. 하르키우가 공격받았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혹시 우리 집 근처는 아닐까' 싶어 너무 무서워요."
14일(현지시간)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난민' 비카(16)는 "몸은 폴란드에 있지만 마음은 늘 우크라이나에 있는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크라이나 남성(18~60세) 출국을 금지하는 계엄령 때문에 우크라이나 북동부 격전지 하르키우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아빠의 안부를 걱정하며 사는 탓이다. "매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검색어로 뉴스를 찾아봐요. 그러다 보면 우울해지고요. 사실 일부러 휴대폰을 안 보기도 해요. 그런데 아빠와 연락을 해야 하니 금방 또 휴대폰을 보게 되죠."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난민'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각지에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인은 유엔난민기구(UNHCR) 집계상 644만4,800명(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전쟁 전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약 4,379만 명)의 약 7분의 1이 해외에서 떠돌고 있는 것이다. 가족을 두고 온 우크라이나를 잊을 수도 없고,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이들의 비극을 폴란드와 독일에서 들어봤다.
분노·걱정·그리움 뒤엉킨 난민의 삶
우크라이나와 동쪽 국경을 맞댄 폴란드는 개전 후 우크라이나인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해 한때 폴란드 체류 난민만 약 150만 명에 달했다. 독일은 현시점 최대 난민 수용국이다(약 125만 명). 한국일보가 두 국가에서 난민을 만난 이유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에 대한 분노를 뼈에 새기고 있었다. 독일 수도 베를린 체류 중인 한나 루딕은 인터뷰를 위해 '막심'이라는 카페에서 만나자는 제안에 "장소를 바꾸자"며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막심'은 러시아 자본이 투입된 곳 같아요. 그런 곳에서 인터뷰할 수는 없습니다." 베를린 소재 러시아대사관 앞에는 러시아 전쟁 범죄 목록이 우크라이나 국기와 함께 24시간 전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남아 있는 가족에 대한 걱정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달랠 길이 없다. 베를린에 사는 고이스터(18)는 "우리(난민)끼리 앉아 있으면 우크라이나 공습 경보에 맞춰 알람이 울린다"며 "군인인 아빠가 안전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남부 미콜라이우에서 엄마와 함께 바르샤바로 탈출한 야리나(9)는 '탈출 당시를 기억하느냐'고 묻자마자 웃음기를 거뒀다. "한 차에 7명이 타고 도망 왔어요. 자꾸 차를 멈춰야 했어요. 무서웠어요. 그런데 더는 말하고 싶지 않아요."
버거운 일자리 찾기... '돌봄 난민'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건 쉽지 않다. 무엇보다 일자리 찾기가 어렵다. UNHCR이 우크라이나 주변 4개국(몰도바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바키아)에 체류 중인 경제활동인구 1만8,501명(이 중 폴란드는 1만1,852명)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3분기 기준 '일을 하고 있다'고 답한 이는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바르샤바 기반 우크라이나 난민 지원 기관인 '우크라이나 하우스'의 직업 상담사 올가 세메니우크는 "취업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요인은 언어"라며 "상당수 난민이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리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엄마 난민' 사정은 더 어렵다.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봐줄 곳이 마땅치 않아서다. UNHCR 조사에서 '취업을 못한 이유'로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한 이는 12%나 됐다. 이 때문에 손주를 돌보기 위해 난민이 된 '할머니 난민'도 많다. 베를린에서 만난 한 중년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두 딸이 네 명의 손주를 데리고 고군분투하는 것을 볼 수가 없었어요. 어린 손주들을 전쟁터에 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래서 딸들의 정착을 돕고자 난민이 됐어요."
뒤처진 교육... '미래'를 저당 잡힌 아이들
상당수 아이들은 교육 기회를 박탈당했다.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 학생들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우크라이나 학교' 부감독 안토니나 미칼로우스카는 이렇게 말했다. "폴란드 내 우크라이나 학령인구 30만 명 중 고작 절반만 폴란드 공교육에 편입됐어요. 상당수는 언어 문제로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요. 따돌림, 차별을 당하는 일도 부지기수입니다."
우크라이나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는 '학교 밖' 난민 아이들 상황은 더 암울하다. 미칼로우스카는 "사회화 교육이 안 이뤄지고 있다는 건 더 큰 문제"라며 "우크라이나 학생들은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어 전쟁까지 맞으면서 교육 기회를 4년 이상 빼앗겼다"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폴란드 등 난민 아동·청소년이 대거 체류 중인 국가의 교육 시스템에 우크라이나 학생을 위한 교육을 추가하는 '통합 교육'을 추진하고 있지만, 다소 늦은 조치라는 평가가 많다.
"미래? 모르겠어요..." '주도권' 빼앗긴 삶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미래에 대한 질문을 할 때마다 이구동성으로 "모르겠다"고 답했다. 전쟁 때문에 삶이 무너졌으니 전쟁이 끝나야만 제 궤도를 찾을 수 있을 텐데, 전쟁이 언제 끝날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귀환은 가장 큰 고민거리다. UNHCR이 지난해 7월 발행한 보고서를 보면 유럽 전역에 거주 중인 난민 중 '우크라이나에 돌아가고 싶다'고 한 이는 76%이었으나, '3개월 내 실제 행동'을 물었을 때는 '지금 있는 국가에 머물겠다'(86%)는 답이 압도적이었다. '지향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은 유예된 삶을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2년 전 폴란드 서부 슈체친에 정착했다는 알로나(32)는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기약이 없어졌다"며 "이제 폴란드에서 일자리를 구하려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 체류 중인 난민까지 더하면 약 1,000만 명의 난민이 있다. 전쟁 전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5명 중 1명이 난민이다. 우크라이나 하우스의 벤자민 코프 디렉터는 "난민의 고통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전쟁 초 난민은 '생존'을 고민했지만 이제는 생존에 더해 '실존'까지 고민합니다. 현재를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하고, 인생의 다음 단계를 밟아야 하는지에 대한 감도, 의지도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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