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2년, 비극과 모순]
2신-전쟁 2년, 지쳐가는 이웃
안보 위기 커진 폴란드 가봤더니
벨라루스 국경엔 전에 없던 경계
시민들 이구동성 "더 강해져야"
편집자주
전쟁은 슬픔과 분노를 낳았다. 길어진 전쟁은 고민과 갈등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년, 우크라이나와 이웃국가의 삶과 변화를 들여다봤다.
"움직이지 마세요. 지휘부가 오고 있습니다."
폴란드 동부 포들라스키에주(州) 작은 마을 오파카 두자. 15일(현지시간) 이곳을 찾은 기자를 향해 총을 든 국경수비대가 경고했다. 2명, 5명, 8명... 감시·검문 인원은 계속 늘어났다. 신원 조회가 한참 이어진 뒤 이들은 "돌아가라"고 요구했다. 돌아가는 길마저 차량으로 약 3㎞를 감시한 뒤에야 국경수비대는 사라졌다.
주민 소개를 받아 찾아간 이곳은 '예전에는 평화로웠다'고 했다. 주민들이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숲길이었다. 마을 분위기는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180도 바뀌었다. 러시아 맹방인 벨라루스 국경 바로 앞에 위치한 까닭이다. 주민들은 러시아가 2년 전 벨라루스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쪽 축인 폴란드는 "러시아 영토 야욕이 뻗칠 수 있다"는 우려도 다른 국가보다 짙다.
폴란드를 짓누르는 안보 위기감을 한국일보가 현장에서 들여다봤다.
'일촉즉발' 폴란드... 5m 국경 장벽 세워
오파카 두자는 남북으로 이어진 폴란드·벨라루스 국경(418㎞) 중간쯤 위치한다. 전쟁 전에는 벨라루스를 향해 별다른 구조물이 없었지만 이제는 족히 3m는 돼 보이는 철제 울타리와 함께 철조망이 겹겹이 설치돼 있었다. 감시카메라도 촘촘히 달렸다. 폴란드는 벨라루스와의 국경 중 약 187㎞ 구간에 최대 5m의 장벽을 세우고도 이를 더 보강하느라 분주하다. 국경을 지나는 강에도 댐을 세워 '요새화'한다는 계획이다. 러시아와 약 1,340㎞에 걸쳐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와는 16일 '국경 안보 강화 협력'을 약속했다.
이런 상황은 폴란드 내 안보 우려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폴란드 동쪽에는 '일촉즉발 위기'가 수차례 닥쳤다. 지난해 7월 러시아 용병 부대인 '바그너 그룹'이 폴란드·리투아니아·벨라루스·칼리닌그라드(러시아)를 잇는 수바우키 회랑에서 합동 훈련을 했을 때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2022년 11월에는 우크라이나 미사일이 떨어지고, 지난해 12월에는 러시아 미사일이 상공을 침범하기도 했다.
러 우방 벨라루스와 '하이브리드 전쟁' 중
포들라스키에 주도인 비알리스토크 국경수비대에서 만난 카타지나 자노비츠 소령은 "국경 지역 위협에 대한 대비·제거는 국경수비대가 원래 충실히 해오던 임무"라면서도 "'전쟁 차단' 역할에 방점이 찍히면서 역할이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전쟁 전에는) 벨라루스 국경수비대와 정기적으로 소통했지만 이제는 소통이 완전히 끊겼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 즉 불확실성의 증가는 위험의 증가를 뜻한다."
벨라루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수개월 전 시작해 현재까지 벌이고 있는 '하이브리드 전쟁'은 폴란드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비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벌이는 전쟁을 뜻한다. 폴란드는 벨라루스가 제3국 이민자를 폴란드 쪽으로 몰아넣어 안보 태세를 실험하려 한다고 본다. 벨라루스 접경 지역에 거주하며 이민자를 구출하는 익명의 활동가는 "벨라루스 정권이 이민자 교통편까지 마련하며 이민자를 '배달'했기 때문에 하루 수백, 수천 명이 국경에 몰렸던 것"이라고 했다.
"전쟁, '남 일' 아니다"...폴란드의 우려
바짝 긴장한 것은 군·경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벨라루스 접경 마을인 스타레 마시에보에 사는 바바라는 "국경 옆에 사는 건 불안하고 괴로운 일"이라며 "이웃들도 비슷한 감정을 토로한다"고 했다. '전쟁을 걱정하는가'라는 물음에 "푸틴(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친 지도자'라는 것을 우리가 2년 동안 확인하지 않았나"라고 답하는 이도 있었다.
국경과 거리가 멀어도 안보 걱정은 마찬가지였다. 폴란드가 언제든 우크라이나 다음 '러시아 목표물'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수도 바르샤바에 사는 마를레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쟁은 더 이상 막연한 것이 아니게 됐다"며 "러시아가 나토와 전면 대결하기로 마음먹는다면 그 시작은 우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역사적으로도 폴란드는 끊임없이 러시아의 공격에 시달려 왔다.
그래서 폴란드인들은 일제히 "폴란드가 군사적으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스타레 마시에보에 사는 한 남성은 "폴란드는 나토 회원국이고 폴란드도 충분히 강하기 때문에 러시아가 섣불리 폴란드를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적이 공격할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군대 규모를 늘리고, 무기를 더 사야 한다는 주장에 120% 찬성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도 폴란드 국민 76.2%가 '군사력 강화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한국 무기 수입...국방력 강화 매진
폴란드 정부는 이미 국방력 강화에 열심이다. 전쟁 전에도 폴란드는 나토가 회원국에 권고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 비중인 '2%'를 비교적 충실히 지켜온 몇 안 되는 국가였지만, 전쟁 후에는 비중을 크게 늘려 지난해 GDP 3.9% 수준까지 기록했다. 미국(3.49%)을 넘은 유일한 회원국이다. 올해 국방비는 GDP 4%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약 20만 명 수준인 병력 규모는 30만 명까지 늘릴 작정이고, 한국 등으로부터 무기도 공격적으로 구매 중이다.
최근에는 '유럽이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올해 11월 대통령선거에서 재집권할 경우 나토 탈퇴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유럽과의 군사 협력을 등한시할 것이라는 전망과 맞물려서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무기 생산 확대, (유럽 내) 군사 협력 강화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우선순위"라고 최근 말했다. 독일·프랑스·폴란드의 군사 외교 협력체인 '바이마르 삼각동맹' 재활성화를 위해 가장 바삐 움직이고 있는 쪽도 폴란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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