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사고 난 화물선 구조하고 보니
구조자 최대 정원보다 11명 더 많아
세월호 10년 지났지만 법·제도 부실
공무원 1명이 선박 8000척 관리·감독
솜방망이 처벌에 끊이질 않는 관행
"화물선이 출발하기까지 무단 승선을 위해 겹겹이 붙어 있는 차량 뒤편에 숨어 있어요.", "승선할 때만 직접(기사) 수기로 기록하지, 하선은 안중에도 없어요." (전남 목포·완도~제주를 오가는 화물기사 A씨)
지난 17일 전남 완도 앞바다에서 화물선과 LNG 운반선이 충돌하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해경은 승선원 77명 전원을 구조했다고 발표지만 화물선에는 정원을 초과하는 무단 승선자가 11명이었다는 사실이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화물선 초과 승선이 관행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칫 대형 참사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완도해양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17일 사고에서 58명이 구조된 제주선적 화물선 A호(5,900톤급)의 최대 승선원은 47명이었다. 당시 완도군 청산면 여서도 인근 남서쪽 6㎞ 해상에서 이 배 파나마 선적 LNG 운반선 B호(9,000톤급)가 충돌했다. 선박구명설비기준(제91조)에 따르면 국내 화물선의 최대 승선 인원은 구명정과 구명뗏목의 수용 가능 규모에 연동된다. 사고 발생 당시 A호 탑승자 가운데 11명은 구조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화물선은 해양수산부 선박입출항관리 시스템인 포트미스(Port-MIS)에 승선인원을 입력한 뒤 입출항한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입력하게 돼있고 신원 검사를 하지 않아 허위로 입력해도 파악할 수가 없는 구조다. 국내항을 오가는 지방 관리 연안항의 경우 그나마 자발적 신고 절차도 없다. 무역항 등의 항만시설 사용 및 사용료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국가 관리 무역항과 국가 관리 연안항, 지방 관리 무역항의 경우에만 항만 입출항 신고 관련 규정이 있지만, 지방 관리 연안항은 관련 규정이 없어 입출항 신고를 받지 않는다. 사고가 난 A호는 지방 관리 연안항 가운데 하나인 고흥 녹동 신항에서 출항했다. 사고가 나지 않으면 영영 정확한 승선인원을 파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원을 초과하거나 화물차를 추가로 선적하면 안전 운항에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선사는 영업 차질을 우려해 비용과 시간을 아끼려는 화물차 차주의 무임승차 요구를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한 제주지역 화물차량 기사(53)는 “원칙대로라면 화물차만 화물선에 적재하고 화물기사는 여객선이나 항공기로 이동해 도착지에서 화물차량을 받아야 하지만 일부 화물기사들은 화물선에 함께 승선한다”며 “화물기사가 차량과 별개로 이동하기는 너무 불편하고, 비용도 여객선에 비해 화물선이 저렴하기 때문에 불법인지 알면서도 무단 승선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여객선에도 화물차를 실을 수 있으나 이 경우 화물기사는 별도의 승선운임을 내야 한다. 또한 여객선은 화물선에 비해 화물차 운임도 5만 원가량 비싸다. 결국 한 달에 10여 차례 제주와 육지를 오가는 화물기사들은 비용을 아끼기 위해 무단 승선을 일삼는 것이다.
화물선 관리·감독도 허술하다. 각 지역에 화물선 해사안전감독관이 2, 3명에 불과하다 보니 내부자 고발이 아니면 불법행위를 적발하기 어렵다. 여수지방해양수산청의 경우 공무원 1명이 연간 8,000척의 관리·감독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해경 역시 단속 권한이 있지만, 관련 신고가 접수될 경우에만 단속을 한다. 제주해양경찰서의 최근 3년(2021∼2023년)간 단속 실적을 보면 10건에 불과하다.
목포씨월드고속훼리 정운곤 전무이사는 "승선 인원을 초과해도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 등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는 까닭에, 걸리면 벌금만 내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해상안전을 위해 화물선사들이 법규를 꼭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물기사들은 화물차량의 관리자로서 화물선에 승선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지만 안전상 문제 때문에 주무 부처인 해수부는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장운재 국립목포해양대 해상운송학부 교수는 “화물선에 화물차량기사가 무단 승선하는 이유 중 하나가 비용 문제”라며 “표준요금제 도입이나 지자체와 정부 차원의 보조금 지원 등 영세한 화물기사들의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임남균 목포해양대 해양학부 교수는 "이번 사고를 통해 화물선의 안전 사각지대가 드러나게 됐다"며 "보여주기식 관리감독이 아닌 실질적으로 화물선의 실태를 관리하고 단속할 인력 충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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