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 장편 소설 ‘프라이스 킹!!!’
자유분방한 서사로 현실 꿰뚫어
“뻔하지 않게 용기 주고 싶었다”
한국의 평범한 작은 마을에 전설적인 장사꾼, 배치 크라우더(본명 박치국)의 ‘킹 프라이스 마트’가 들어서며 소설은 시작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을 제외하고 전 세계의 언론이 주목하는 그가 내세운 “여기에 없는 물건? 천국에도 없어!”라는 자신만만한 마트 홍보 문구는 허언이 아니다. 원한도 대상도 없는 복수나 그럭저럭 견딜 만한 불행, 망각도 ‘당일 배송’이 가능하다. “결제는 후불. 신뢰로 쌓은 이름, 품질로 보답하겠다”는 배치 크라우더의 약속은 믿을 수 있다.
폭력적인 쌍둥이 형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자란 27세 청년 구천구는 유명 무당인 엄마의 주선으로 킹 프라이스 마트의 유일무이한 직원으로 취업한다. 엄마의 목적은 어떤 선거에서든 53%의 득표율로 승리하게 해준다는 성물 ‘베드로의 어구’.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 성물을 차지하려는 각 세력의 각축전이 펼쳐지는 사이 대선 후보로 나선 백종원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맞다, 현실에서 선거철마다 정계 진출설에 휘말리는 요리연구가이자 사업가인 그 백종원이다.
당혹·유머 너머의 무언가
제29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김홍 작가의 장편소설 ‘프라이스 킹!!!’의 초반부 줄거리다. “뭘 본 거지”라는 당혹스러움은 당신만의 것이 아니다. 해당 상의 제1회 수상자이자 심사위원이었던 은희경 작가도 이 작품을 읽으며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니 안심해도 좋다. 그렇다면 이 소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김 작가는 한국일보에 “’프라이스 킹!!!’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우리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전했다. “이상한 이야기를 읽고 느낀 생경한 감각이 용기가 됐으면 좋겠다. 뻔하지 않게 용기를 주는 이야기였으면 한다”라는 것이 작가의 말이다.
2017년 등단 이후 장편소설 ‘스모킹 오레오’(2020) ‘엉엉’(2022) 등을 통해 “말 같지도 않은 말의 세계로 간다”(강보원 문학평론가)는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한 김 작가의 신작은 평생 주변에 휘둘리던 구천구의 비현실적인 성장담을 통해 자본주의와 정치 제도라는 한국 사회를 이루는 현실의 두 축을 건드린다. 이전부터 소설에서 정치인 이인제,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 등 유명인의 실명을 거침없이 언급한 김 작가는 이번에는 백종원을 소환한다. 세계관 일부를 공유하는 작품 ‘엉엉’에서도 박종일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대통령이 됐던 그다.
자본주의 사회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백종원이 대통령이라는 한국 정치의 정점에 오른다는 설정은 노골적이다. 풍자의 방점은 한국 정치에 찍혔다. 김 작가는 “백종원의 자리에 유재석을 넣어도 좋고, ‘백반기행’ 허영만을 넣어도 상관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진정한 의미를 생성하지 못하고 겉도는 정치는 어떤 기표로 바꿔도 무관한 상황을 만든다는 생각을 담았다”고 덧붙였다. 지금도 4월 총선을 앞두고 백종원을 비롯해 온갖 유명인 영입에 바쁜 정치권의 폐부를 찌르는 대목이다.
냉소 대신 ‘다정함’으로 부대끼기
그저 ‘골 때리는’ 소설은 아니다. 기독교·불교, 무속신앙을 아우르는 종교적, 철학적 사유도 엿보인다. 구천구가 자신을 위협하는 쌍둥이 형 이구, 칠구와 합쳐지면서 완벽한 구체 ‘구³’이 되는 장면은 형이상학적이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속 베이글 형태의 블랙홀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별것 아닌 존재였지만 다정함을 무기로 싸웠듯 평범하고 소심한 구천구 역시 유일한 친구인 동네 분식집 할머니를 살뜰히 챙기는 인물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김 작가의 소설 속 인물은 이처럼 현실을 꼬집으면서도 냉소하기보다는 함께 바닥을 구를지라도 부대끼며 웃는 편을 택한다. ‘엉엉’에 이어 ‘프라이스 킹!!!’의 주인공이 나란히 새로운 이름을 얻으며 거치는 일종의 재탄생 단계는 낙관으로 읽힌다. “우리에게 있어서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것의 태반을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는 수필가 김진섭의 ‘명명철학’의 문장처럼 진정한 이름을 가진 이들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몸에서 떨어진 뒤꿈치가 홀로 다니거나, 사람이 구체가 되는 자유분방한 서사로 포장되는 황당한 전개를 납득시키는 건 작가 필력의 힘이다. 난해하지만, 재미있어서 술술 읽힌다. 김 작가는 이런 평가에 “정확히 제가 원하는 독자의 반응이지만, 안타깝게도 ‘난해하다’까지만 말해주시는 분도 많이 계신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말했다. “전적으로 저의 부족함이라고 생각하고요, 앞으로도 난해한데 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지금처럼 계속 이상한 이야기를 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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