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 후 고소득 바라보고 주 80시간 견디는데
의대 증원 이뤄지면 "경쟁자 무한 증식 느낌"
'나는 힘들게 들어왔는데…' 공정 이슈도 제기
'전공의가 나서야 승리한다' 의사 사회 경험도
대형병원 운영의 주축인 전공의들은 일주일에 80시간까지 근무하고 최대 36시간까지 밤을 새우며 일한다. 그간 전공의특별법 등이 통과돼 처우 개선이 이뤄져왔지만, 다른 직종에 비하면 여전히 과로 수준의 노동시간이다. 전문의가 되고자 수련하는 입장이기에 급여도 상대적으로 낮다.
그간 전공의들은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라며 수련환경과 근로조건 개선을 촉구해왔다. 하지만 정작 정부가 내놓은 의대 정원 증원안에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다. 간호사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노동강도를 낮춰달라면서 증원은 반대하는 건 모순"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전공의들이 '주 80시간 노동'을 개선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를 전면 백지화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일반인 입장에서는 의아한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①기대소득이 줄어든다는 경제적 이유 ②공정 이슈·감정적 원인 ③구조적·경험적 원인을 전공의 집단행태의 이유로 꼽았다.
경제적 원인은 전공의들의 '모순적' 행동을 설명하는 데 가장 먼저 꼽힌다. 전문의가 돼 개원가로 나가면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로 전공의 시절의 저임금·중노동을 버티는데, 전체 의사 수가 늘어나면 자신의 수익이 줄어들 거라 염려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전공의나 의대생이 기성 의사보다 의대 정원에 대한 민감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의사 사회는 의대생이 될 때는 물론 전문의가 된 이후에도 무한경쟁 체제"라며 "전공의 입장에선 자기는 개원 시장에 진입도 안 했는데 정원을 늘린다고 하니, 경쟁자가 무한히 늘어난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의 집단행동의 또 다른 근본 동기를 정부의 비급여 규제 움직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윤 서울대 교수는 "전공의 요구사항 중 처우 개선 관련 내용은 모두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포함돼 있다"며 "전공의들의 정책패키지 거부는 혼합진료·미용시장 규제나 개원면허 도입을 문제 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정 이슈'에 민감한 젊은 세대인 전공의들이 의대 진입 문턱을 낮추려는 것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자신들은 '의대 정원 3,000명' 시절에 시간과 노력, 금전을 투자해 의대에 들어와 면허를 취득했는데, 정원을 5,000명으로 늘려 의사가 되기 쉽도록 규칙을 바꾸려 하자 부당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정 정책실장은 "2030세대가 '비정규직 정규화'를 반대하는 이유와 비슷하다"며 "능력주의·엘리트주의가 극심해 '나와 같은 조건에서 경쟁을 하지 않고도 같은 면허를 받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공의 집단 내부의 구조적·경험적 요인에 주목하는 설명도 있다. 전공의 수는 전체 의사의 10% 수준이지만 중증·응급의료를 담당하는 대학병원에서는 소속 의사의 30~40%를 차지하며 궂은일을 도맡고 있는 터라, 이들의 현장 이탈은 그대로 필수의료 체계 동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와 맞물려 의사 사회에선 전공의가 단체행동에 나서야 정부를 대상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게 학습된 상황이라, 전공의 집단 안팎에서 이번에도 전공의가 나서야 한다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됐다는 것. 실제 2000년 의약분업, 2020년 의대 증원 국면 모두 전공의들이 대정부 투쟁에 앞장서 정원 감축을 반대급부로 얻어내거나 증원 계획 자체를 백지화시켰다.
의사단체의 대표 격인 대한의사협회(의협)가 직접 전면에 나서는 대신 후원금 모금, 법률 지원 등으로 전공의 집단행동을 엄호하고 있는 상황 또한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2020년에도 고발을 당한 10명 모두 전공의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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