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밤에 피는 꽃'
금토드라마 역대 최고 시청률
전문가들이 꼽은 미덕 세가지
①주체적인 여성 서사
②'여성 홍길동'이 주는 쾌감
③시대 한계 뛰어넘은 인물들
편집자주
‘수ㆍ소ㆍ문’은 ‘수상하고 소소한 문화 뒷 얘기’의 줄임 말로 우리가 외면하거나 놓치고 지나칠 수 있는 문화계 이야기들을 다룹니다.
지난주 MBC 드라마본부. ‘밤에 피는 꽃’을 기획한 제작진들은 마지막 두 회 공개를 앞두고 시청률 ‘내기’를 했습니다. 이전까지 시청률은 7~13%. 한 제작진이 덕담 차원에서 말한 16%가 MBC 내부에서 예상한 최고 시청률이었죠. 예상은 기분좋게 빗나갔습니다. 17일 방송된 마지막 회 시청률은 무려 18.4%로, 역대 MBC 금토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대에 ‘막장’ 전개도 없는 지상파 드라마를 본방사수 한다고요? 제작진도 놀랐다고 합니다. 드라마를 기획한 남궁성우 MBC 드라마 EP(방송책임프로듀서)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시대에 다음 화를 기다린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어떻게 황금같은 주말에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불러모았을까요.
①시대·성별의 담 뛰어넘는 주체적인 여성 서사
‘밤에 피는 꽃’은 낮에는 과부지만, 밤에는 복면을 쓰고 담을 조여화(이하늬)의 ‘이중생활’을 다룬 코믹 액션 사극입니다. 남편을 따라 죽는 것이 과부로서 최고 덕목인 조선시대, 그에게 허락된 건 지아비를 그리며 곡을 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여화는 밤마다 몰래 담을 넘어 생사기로에 선 여성들, 인신매매 당한 아이들, 누명을 쓴 노비 등 약한 이들을 돕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오늘 죽더라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살아있는 이유가 없으니 어떻게든 살고자 했습니다.” 여화의 말입니다. 그의 현실은 사람 취급도 못 받는 “조선에서 가장 하찮은 존재”지만, 어떻게 의미 있게 살지 매일 고민합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남성에게 기대지도 않습니다. 그가 밤마다 뛰어넘은 담은 시대의 벽이자 여성들 앞에 놓인 견고한 벽입니다.
여화가 MBC 드라마의 주체적 여성 서사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MBC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을 굉장히 잘 그려왔어요. 궁녀를 왕의 여자가 아닌 전문직으로 조명한 '대장금', 한국 사회의 외모 콤플렉스를 다룬 '내 이름은 김삼순' 등이 있었죠. 그런 흐름을 놓쳤다가 최근 ‘옷소매 붉은 끝동’의 성덕임, ‘연인’의 유길채, 그리고 조여화로 그 힘을 다시 복원했어요.”(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②국가의 빈자리 채우는 ‘여성 홍길동’이 주는 쾌감
여화는 악인을 발견하면 망설임 없이 행동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요. “열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아비 노름빚 대신 팔려 가도 국법으로 지켜주지 못할망정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세상이니 이 얼마나 개탄스러운 일인가.” 국가의 실패를 고스란히 떠안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약자입니다. 드라마는 매회 ‘창작에 의한 허구’라고 밝히지만 우리 시대와 겹쳐보이는 지점이 적지 않습니다. 행동하는 여화는 우리의 답답함까지 속시원하게 날려줍니다.
그런데 사실 첫 기획안의 여화는 조금 다른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종사관 박수호(이종원)와의 로맨스가 짙어지는 설정이었지만, 제작진은 로맨스를 최소화한 ‘조선판 여성 히어로’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남자는 홍길동도 있고 임꺽정도 있잖아요. 복면 쓰고 활동하는 의로운 여성 히어로도 만들어보기로 했어요.”(남궁성우 MBC EP)
드라마는 공권력의 부재, 권력 암투 등 묵직한 주제를 경쾌하게 풀어냅니다. “인기의 가장 큰 힘 중 하나가 코믹이에요. 무거운 걸 안 보여줄 수가 없고 잘못 보여주면 처지게 되는데 아주 교묘하게 코믹 코드를 집어넣어 끝까지 몰입할 수 있게 해줘요.” (공희정 드라마평론가) 여화가 정의감으로만 똘똘 뭉친 납작한 인물이 되는 것을 막은 것 역시 코믹. 박수호의 배 근육을 떠올리며 설레고, 외간 남자의 팔에 안겼다는 죄책감에 악몽을 꾸는 친근함으로 그와 시청자 사이는 가까워집니다.
③시대의 한계 뛰어넘은 인물들의 매력
신분을 막론하고 단단한 주체성을 가진 등장인물들도 시청자를 사로 잡은 매력 요소로 꼽힙니다. 여화를 돕던 양민 연선(박세현)은 상단 도방이 되어 경제인으로 성장하고, 길에서 물건을 파는 꽃님(정예나)은 천자문을 배우며 자신만의 꿈을 키웁니다. 왕을 지척에서 보필하던 좌부승지 박윤학(이기우)은 공직을 내려놓고 한량이 되기로 하죠. 신분이 정해놓은 미래가 아닌, 자기가 선택한 삶을 차근차근 꾸려갑니다.
15년 만에 나타난 여화의 남편 석정(오의식)은 시대의 한계를 유쾌하게 뛰어넘은 캐릭터의 정점을 찍습니다. 그는 남편 노릇을 하려 드는 대신 여화가 해 온 일을 존중해주며 “나로 인해 고통받았을 그 여인에게 자유를 주십시오!”라고 외칩니다.
“드라마는 주인공 두 사람만으로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도 흥미로워야 하는데, 색다른 캐릭터들이 많았어요.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 뿐 실제 조선의 유교 관습 속에서도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여성들이 있었을 거예요. 그런 점들을 아주 잘 보여준 드라마였습니다.”(정석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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