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2년, 비극과 모순]
"사망 후 3년 보관... 정부가 비용 지원"
개정안 낸 올렉산드리브나 의원 인터뷰
편집자주
전쟁은 슬픔과 분노를 낳았다. 길어진 전쟁은 고민과 갈등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년, 우크라이나와 이웃국가의 삶과 변화를 들여다봤다.
우크라이나인 나탈리아 키르카흐 안토넨코는 군인이었던 남편 비탈리가 2022년 11월 전장에서 전사했을 때 임신 13주 차였다. 홀로 아이를 낳은 그는 딸 비탈리아를 키우며 남편을 잃은 슬픔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생전 남편과 약속했던 '대가족'의 꿈을 혼자라도 이루고 싶었고, 남편이 죽기 전 보관해 둔 정자를 사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현행법상 본인 사망 뒤에는 정자 사용이 불가한 것은 물론 바로 폐기해야 했다. '죽은 뒤 자신의 정자를 사용해도 좋다'는 내용의 남편 유언도 소용이 없었다.
미국 CNN방송이 소개한 안토넨코 같은 사연은 이제 우크라이나에서 줄어들 전망이다. '전사자 정자를 3년 동안 폐기하지 않고 그 보관 비용을 정부가 지원한다'는 내용의 유전자법 개정안이 지난 7일(현지시간) 의회에서 의결됐기 때문이다. 개정안을 공동발의한 여당 인민의종 소속 드미트리에바 옥사나 올렉산드리브나 의원은 "이 법은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올렉산드리브나 의원과 22일 수도 키이우에서 만나 개정안의 의미를 들어봤다.
"아이 낳겠다는 의지, 지켜주는 게 국가 의무"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는 자신의 정자를 보관하려는 남성이 급증했다. 전쟁 중 죽거나 다쳐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경우에 대비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전장에서 사망하자마자 정자를 폐기하는 건 아이를 갖겠다는 열망을 짓밟는 것이라고 올렉산드리브나 의원은 판단했다. 그는 의회에서 국가보건위원회 부위원장 및 혁신기술·이식 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사망 후 정자를 폐기하는 건 그전에 아이를 갖기 위해 수행했던 모든 노력을 무효화시키는 것"이라며 "본인이 정자 보관을 허가하고 그가 지정한 사람이 아이를 낳을 용의가 있는 한 이러한 의지를 지켜주는 게 국가의 의무"라고 개정안 발의 이유를 밝혔다. 법은 난자에도 적용된다.
법안은 7일 우크라이나 의회인 라다 본회의에서 무난하게 통과됐다. 재적 인원 326명 중 기권(62명)은 있었지만, 반대표는 없었다.
"우크라 인구 회복 위한 작은 발걸음"
그는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에게도 이러한 취지의 법이 확대 적용돼야 한다고 본다. 긴 전쟁으로 인해 출생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올렉산드리브나 의원은 "지난해 태어난 아이는 약 18만7,000명 정도로, 1991년 우크라이나가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최악의 지표"라며 "신체적 장애·부상만이 생식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심리적 트라우마,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이 사회 전반의 출생을 저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렉산드리브나 의원은 "개정안은 우크라이나 인구 회복을 위한 작은 발걸음"이라고 말했다. 전쟁 이후 고국을 탈출해 해외에 자리한 난민만 644만 명에 달하는 등 우크라이나 내 인구가 급감한 것과 맞물려서다.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 산하 프투카연구소의 지난해 9월 발표에 따르면 전쟁 전이던 2021년 4,379만 명이던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가 2030년 2,400만~3,200만 명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추정이 나올 정도로 전망도 밝지 않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생각하면 제도 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일은 없도록 분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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