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소재 공포영화로 흥행 돌풍
윤봉길, '의열 장의사'... '주술 한일전'
'서울의 봄' 이후 가장 눈에 띄는 흥행
“뭐가 나왔다고 거기(관)서. 겁나 험한 게.” 이달 22일 개봉한 영화 ‘파묘’ 속 등장인물 이화림(김고은)의 대사다. 토속적인 말투에 긴장이 서려있다. 풍수지리에 무속신앙이 포개지고 역사가 더해지며 빚어지는 공포가 응축돼 있다.
‘파묘’는 24일까지 관객 145만 명이 찾았다. 25일 예상 관객 70만 명을 더하면 상영 첫 주 200만 명 넘게 모으게 된다. 지난해 11월 개봉한 ‘서울의 봄’(1,312만 명) 이후 가장 눈에 띄는 초기 흥행 행보다. 공포영화로서는 흔치 않은 성과다.
'오컬트 장인' 장재현 감독 3번째 영화
‘파묘’는 한국에서 보기 드물게 오컬트 영화(주술이나 영적 현상을 다룬 영화)를 표방한다. ‘검은 사제들’(2015·544만 명)로 데뷔해 ‘사바하’(2019·239만 명)를 선보인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영화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재미동포 가족으로부터 의뢰를 받은 두 무속인의 사연으로 시작한다. 이 가족의 남성들은 까닭을 알 수 없는 악몽과 이명에 시달린다. 갓난아이마저 현대의학으로 파악할 수 없는 이상 증세로 병원에 입원해 있다. MZ세대 무속인 화림과 윤봉길(이도현)은 조상 묘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한다. 가족의 장손은 거액을 들여 이장을 결심한다. 화림 일행은 유명 풍수사 김상덕(최민식)과 장의사 고영근(유해진)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상덕은 꺼림직한 예감을 떨치지 못하고 이장을 하려다 예상치 못했던 초자연적 현상과 마주한다.
영화의 내용은 새롭고, 전개는 예측불허다. 풍수와 무속이라는 한국적 요소에 일본 샤머니즘이 끼어든다. 식민잔재의 역사에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을 소환하기까지 한다. 여러 명칭이 '주술 한일전’을 암시하기도 한다. 김상덕과 고영근, 윤봉길, 이화림 모두 독립운동가 이름이다. 이들이 타고 다니는 차의 번호판에는 ‘1945’와 ‘0815’가 적혀 있다. 고영근은 의열단을 연상시키는 ‘의열 장의사’를 운영한다.
직설적 메시지에 단서 맞추는 재미
‘민족정기 바로 세우기’라는 메시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나 영화의 서술 방식은 직설적이지 않다(적어도 중반부까지는). 퍼즐 같은 여러 단서들을 맞추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감독은 공포영화의 문법에 충실하면서도 자신만의 인장을 스크린에 새겨 넣는다. 악령이 잘 보이지 않음으로써 더 무서운 역설이 영화 전반부를 장악한다. 세심한 표현력으로 화면에 한기를 심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 재미동포 가족의 장손이 머무는 호텔방 창문은 경복궁과 청와대를 마주하고 있다. 일제 총독부와 총독관저가 있던 곳이다. 냉기 속에서 간혹 등장하는 유머가 긴장을 이완시키기도 한다. 사람 목이 뒤로 돌아가는 장면(‘엑소시스트’), 뱀을 닮은 도로를 이동하는 자동차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샤이닝’) 등 고전 공포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빼놓지 않기도 한다. 열성 영화 팬들에게는 잔재미로 작용할 대목이다.
영화는 장 감독의 어린 시절 기억에서 시작됐다. 장 감독이 100년 넘은 무덤을 이장하던 모습을 지켜봤던 경험이 이야기의 씨앗이 됐다. 장 감독은 “그때 오래된 나무 관에서 느꼈던 두려움, 궁금함, 호기심 이런 복합적인 감정들을 언젠가 작품에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는 컴퓨터그래픽(CG)을 최소화하고 실제 모습을 촬영하려 했다고 한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묘의 생경함과 불편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약 1,200평(약 3,967㎡) 부지에 실제 묘지 모습을 구현했다. 2m 넘게 흙을 쌓아 올리고 나무 50그루를 옮겨 심었다. ‘파묘(破墓)’는 묘를 파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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