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미 국방부 ‘핵겨울 보고서’- 2
(이어서) 미 국방부 보고서는 거센 정치적 논란을 낳았다. 구소련과의 핵군축에 박차를 가하는 대신 새로운 군비 확장을 위해 핵겨울 가설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난이었다. 의회가 국방부에 공식보고서를 제출하게 하는 데 기여한 국가자원방위위원회(NRDC) 수석변호사 제이콥 셰어(Jacob Scherr)는 의회가 기대했던 정책 의제에 대한 과학적 분석 없이 핵겨울 가설의 요점을 교묘히 무시한 ‘피상적인 눈가림’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TTAPS의 핵겨울 가설이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핵폭발과 유사한 영향을 미치는 거대 화산 폭발이나 운석 충돌 등의 사례와 비교하더라도 핵전쟁의 기후환경 영향이 인류 생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고 볼 근거는 희박하다는 주장. 근년에는 과학적으로 사실상 폐기됐지만 거꾸로 핵폭발이 온실효과를 낳아 지표 온도를 상승시키리라는 이른바 ‘핵여름’ 가설을 제기한 이도 있었다. 핵전쟁으로 황폐해진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삭막한 공간이 아마 핵여름 가설에 근거한 설정일 것이다.
전 세계 핵 보유량은 1980년대 약 7만 기로 정점을 찍은 이래, 북한 등 보유국은 다소 늘었지만 전체 규모는 1만 기 수준으로 꾸준히 감소해왔다. 냉전 종식과 함께 상대적으로 잦아든 핵전쟁-핵겨울 공포는 2022년 8월 미국 럿거스대 환경과학과 앨런 로보크(Alan Robock) 교수가 이끈 국제연구팀이 학술지 ‘네이처푸드’에 발표한 논문으로 또 한번 부각됐다. 세계 핵탄두의 90%를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가 일주일간 4,400기의 핵무기만 쏘더라도 약 1억5,000만 톤의 먼지와 그을음으로 핵겨울을 야기, 향후 3, 4년간 세계 식량 생산량이 전쟁 전보다 90%가량 줄어들고 약 50억 명이 굶어 죽게 될 것이라는 추산. 그 규모는 핵폭발로 인한 직접 사망자(약 3억6,000만 명)의 15배에 달하는 숫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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