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기후행동]
독일 9유로 티켓 벤치마킹한 기후동행카드
승용차 이용자는 비용효과 낮고 경기·인천 사용 불가
주행거리 감축 시 추가할인 등 연계 필요
편집자주
기후위기가 심각한 건 알겠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일상 속 친환경 행동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요? 열받은 지구를 식힐 효과적인 솔루션을 찾는 당신을 위해 바로 실천 가능한 기후행동을 엄선해 소개합니다.
‘교통비도 아끼고 지구도 지킨다’는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 출시 한 달이 됐습니다. 기후동행카드는 월 6만5,000원으로 서울 시내 지하철과 버스, 공공자전거 ‘따릉이’까지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서비스인데요. 지난달 27일 출시 이후 지난 25일까지 46만6,000장이 판매됐습니다. 실제 교통에 사용된 건 30만7,000장이고요. 지난해 서울 대중교통비가 인상(지하철 150원, 버스 300원)되며 부담을 느낀 시민들이 카드를 구매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카드는 2022년 독일의 '9유로(약 1만3,000원) 티켓' 실험 흥행을 본떠 설계됐습니다. 독일은 이때 대중교통 이용객이 늘면서 3개월간 약 180만 톤의 탄소를 감축했다고 하는데요. 덕분에 프랑스·스페인 같은 유럽 다른 국가에 비슷한 정책이 유행했고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독일은 현재 티켓 가격을 49유로(약 7만 원)로 조정한 뒤 정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보다 저렴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기후동행카드는 제법 괜찮은 기후대응수단 같습니다.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에 따르면, 한 사람이 일주일에 딱 한 번만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연간 469.4㎏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습니다. 약 71.1그루의 나무를 심어 탄소를 흡수하는 것과 같은 효과죠. 이용 횟수와 이용자 수가 모두 늘어난다면 감축효과는 더욱 강력해질 겁니다.
하지만 이 정책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실제로 클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제기됩니다. 승용차 이용자가 ‘뚜벅이’로 바뀔 만한 유인이 낮다는 이유입니다.
'뚜벅이 서울시민'에게만 유리한 카드
기후동행카드는 월 40회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민에게 이득일 것으로 분석됩니다. 주 5회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고 있다면 쏠쏠한 선택입니다. 하지만 승용차 이용자에겐 이 혜택이 상대적으로 매력적이지 않을 거란 분석입니다. 입법연구기관인 공익허브의 김의정 연구원은 “승용차를 보유한 사람은 운행을 하지 않더라도 유류비 외에 기본적인 유지비가 드는데 여기에 6만 원이 넘는 티켓을 추가로 사야 하는 것”이라며 “원래 대중교통을 많이 타던 사람이라면 절약이 되겠지만 현재 가격으론 자가용 보유자를 위한 유인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구매자 연령대를 보면 원래 뚜벅이었던 분들이 주로 카드를 샀다는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대(27%)와 30대(29%)가 절반이 넘거든요. 지난해 서울시에 등록된 자동차 중 20, 30대가 소유한 건 16.3%에 불과했습니다.
서울 외 경기·인천 등에서 카드를 쓸 수 없는 점도 승용차 사용자들의 기후동행 결심을 막는 요인입니다. 경기연구원이 2019~2022년 수도권 통행량을 분석한 결과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 인원은 약 200만 명, 이 중 약 55%가 승용차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의 ‘탄소공간지도’를 봐도 경부·경인고속도로, 서부·동부간선도로, 분당수서간도시고속화도로 등 서울과 외부를 연결하는 도로에서 탄소 발생이 많습니다.
결국 서울의 교통 탄소배출을 줄이려면 수도권 자동차 운행이 감소해야 하지만 현재로선 요원합니다. 경기 성남에서 서울 용산으로 출근하는 직장인 서모(32)씨는 “성남에서도 할인을 받을 수 있다면 써볼 의향이 있지만, 지금은 시간을 아끼는 게 낫겠다 싶어 차를 계속 이용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는 5월 국토부의 대중교통 할인 정책인 K패스가 시행된다면 지역연계 문제는 해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월 15회 이상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지출 금액의 기본 20%를 최대 60회 한도 내에서 환급해주는 정책입니다. 전국에서 사용 가능한 게 장점이죠. 하지만 K패스 역시 자동차 사용자를 대중교통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차량을 적게 보유하고 있는 청년(할인율 30%)과 저소득층(53%)에 혜택이 집중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주행 줄일수록 더 많은 혜택 연계를
대중교통 할인이 탄소중립 실천으로 거듭나려면 자동차 이용자에게 더 큰 할인이 제공돼야 할 겁니다. 김광일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은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승용차 에코마일리지를 통해 주행거리 감소 실적과 대중교통 할인 정책을 연계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아예 대중교통 100회 무료 탑승 마일리지를 선지급하자는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공익허브가 지난해 말 제안한 ‘모두의티켓’입니다. 저렴한 데다 따로 환급 요청 등을 할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는 설명입니다. 공익허브는 이 정책에 대해 자가용 이용자 302명에게 설문을 했는데요. 78.5%가 ‘지금보다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할 것’이라고 답했고, 그 횟수는 일주일에 3.5회였습니다.
제안이 반영된다면 교통할인의 ‘기후동행’ 효과는 개선될 것입니다. 단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 남아있습니다. 대중교통 인프라가 적은 지역에선 무용지물이라는 겁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수도권은 같은 거리를 승용차로 갈 때보다 대중교통으로 갈 때 통행시간이 1.1배인데, 다른 권역은 최대 3배나 오래 걸립니다.
지방, 특히 도시가 아닌 지역에 산다면 자동차 사용이 불가피한 거죠. 이에 2019년 서울의 1인당 도로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1,216㎏로 전국 평균(1,595㎏)보다 낮았던 반면 경기 연천(7,230㎏), 전남 보성(6,363㎏) 등은 수배에 달하는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김 사무처장은 “대중교통 서비스가 열악한 곳에 대한 시설 공급 정책이 없다면 할인 제도가 전국에서 효과를 보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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