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로 관광객 몰려 물가↑…내국인 불만
외국인 대상 음식·교통비 이중가격제 검토
"합법적 바가지"·"평판 나빠져" 비판 속출
'엔저(엔화 약세)' 장기화로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자 일본에서 '이중가격제'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중가격제는 같은 상품·서비스를 외국인 관광객에겐 비싸게, 내국인에겐 싸게 파는 제도다. 이미 일부 교통수단과 음식점에서는 이중가격제를 적용하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일본 매체를 종합하면 최근 일본에선 외국인 관광이 증가해 물가가 오른 지역을 중심으로 이중가격제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관광객 소비로 물가가 올라 현지인들까지 피해를 보니 외국인과 내국인에게 가격을 달리하자는 취지다.
일본 민영 TBS는 지난 14일 유명 관광지인 홋카이도의 니세코 스키장 인근 상권을 조명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대부분인 이곳에선 라면이 한 그릇당 2,000엔(약 1만7,600원)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했다. TV도쿄비즈도 도쿄 쓰키지시장에선 최고급 소고기 꼬치 한 개가 3,000엔(약 2만6,500원)이라고 보도했다. 매체들은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국인들은 국내 여행을 다니기가 힘들다"고 전했다.
최근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일본의 관광 수요와 관광객 소비는 크게 늘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외국인 2,506만6,100명이 일본을 찾았다. 이들이 일본 내에서 지출한 총액은 5조3,000억 엔(약 47조 원)에 달했다.
이 때문에 이중가격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나가야마 히스노리 일본 료칸협회 부회장은 이중가격제를 지지하면서 "싱가포르에선 테마파크나 슈퍼마켓, 레스토랑 등에서 거주자에게 할인 혜택을 주는 방법으로 이중가격제를 운영한다"고 소개했다. 일단 가격을 높게 매긴 뒤 내국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내면 할인을 해주는 방식이다. 일본의 한 여행사도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외국인에게만 비싸게 받으면 차별로 여겨질 수 있으니 일단 가격을 인상하고 내국인에겐 할인 혜택을 제공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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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중가격제를 시행하는 곳도 있다. 니세코 스키장의 상권은 자체적으로 가격을 이중으로 매기고 있었다. 도쿄와 홋카이도를 오가며 장사한다는 한 푸드트럭 사장은 TBS에 "(도쿄에선) 덮밥을 1,080엔(약 9,500원)에 팔지만, 이곳은 (상황이) 특별하니 1,500엔(약 1만3,200원)에 판다"고 밝혔다. 또 일본 JR그룹은 지난해 10월 외국인 관광객에게 판매하는 JR철도패스 가격을 기존의 49~77%가량 인상했다.
이중가격제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구매력 차이가 큰 개발도상국이 주로 시행해왔다. 예를 들어 인도의 타지마할 입장료의 경우 현지인에겐 50루피(약 800원)만 받지만, 외국인에겐 1,100루피(약 1만7,600원)를 받아 20배 넘게 차이가 난다. 네팔과 캄보디아는 유적지와 버스 등에서 이중가격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수준이 높은 일본에서도 이중가격제가 논의되는 건 이례적이다.
사실상 외국인 차별이라 관광 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누리꾼 일부는 이중가격제 소식에 "자칫 일본의 평판을 망가뜨릴 수 있다", "우리도 해외여행 갔을 때 돈을 더 내라고 하면 기분이 안 좋지 않겠느냐" 등의 의견을 남겼다. 지난해 일본 관광객의 4분의 1을 차지한 우리나라의 누리꾼들도 "말이 이중가격이지 합법적 바가지랑 똑같다", "가격이 오르면 여행 갈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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