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성 결여된 정책 발표에 실망감
자동차·보험·지주 등 저PBR주 '뚝'
정부의 기업가치 제고 정책인 ‘밸류업 프로그램’이 베일을 벗자 그간 수혜주로 꼽혀 온 종목의 주가가 줄줄이 흘러내렸다. 저(低)주가순자산비율(PBR) 개선 압박 수위가 기대에 못 미쳤다는 판단에 실망 매물이 쏟아진 건데, 중장기적으론 투자심리가 개선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26일 유가증권(코스피)시장에서는 밸류업 수혜주로 구분되던 저PBR 종목이 일제히 하락했다. 현대차와 기아가 각각 2.05%, 3.21% 내렸고, KB금융(-5.02%), 하나금융지주(-5.94%) 등 금융주도 급락했다. 이에 코스피는 오전 한때 2,629.78까지 밀렸으나 이후 외국인이 매수 우위로 돌아서면서 낙폭을 줄여 0.77%(20.62포인트) 내린 2,647.08로 마감했다.
시장 기대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에서 밸류업 프로그램 내용이 이를 충족하지 못한 결과로 풀이된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예고 이후 코스피 상승분(8%)의 60.6%를 저PBR 관련 업종이 견인했다. 이달 23일까지 한 달간 보험업 수익률은 33% 수직 상승했고, 자동차(27%)와 증권(26%), 은행(17%) 등도 껑충 뛰었다. 그만큼 기대가 컸고, 주가에 선반영된 상태였다.
그러나 정부 발표를 확인한 투자자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강제성과 유인이 약하고 구체성이 결여돼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란 반응이 나왔다. 당분간은 과열 소화를 위한 조정 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기대와 현실 사이 큰 간극이 확인된 만큼 저PBR주의 주가 충격은 감안해야 한다”며 “29일에 집중된 금융주와 현대차 배당 기준일 이후 차익 매물이 출회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단기 충격과 별개로 시장 전문가들은 기업과 주식시장 체질 개선 방향성을 확인하고 첫발을 뗀 점을 고무적으로 봤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주주환원과 공정 가치에 대한 인식 개선도 기업에 압력으로 작용한다”며 “법률적 강제성 없이 시장 압력을 계속 쌓아 나가는 것이 이 정책의 기본 방향”이라고 했다. 정책이 보완·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증시에 긍정적 역할을 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평가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이번 밸류업 관련 조정은 ‘파는 조정’이 아닌 ‘사는 조정’”이라며 “여전히 ‘이익이 좋고 현금이 많은 기업’이 정책 수혜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저PBR 종목을 테마주처럼 투자하는 데 대한 경고음도 이어졌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이날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1차 세미나’에서 “밸류업 방안은 단기 주가 부양이 절대 목표가 아니고 긴 호흡에서 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시발점”이라며 “일본도 10년에 걸친 기업 가치 제고 노력이 저PBR 종목의 초과 수익률을 보장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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