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기간 세계 미래 생각하며 연출
물건 끝까지 재활용했던 에도 시대 배경
순환의 삶, 청춘의 사랑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난 21일 개봉한 일본 영화 ‘오키쿠와 세계’(2023)는 분뇨(똥)가 주요 소재다. 19세 중엽을 배경으로 당시 일본 중심 도시 에도에서 분뇨를 사서 농촌에 비료로 되파는 남자와 몰락한 사무라이 딸의 사랑을 그린다. 악취를 풍기는 듯한 분뇨가 수시로 등장하는 가운데 청춘의 아름다운 사랑이 스크린을 수놓는다. 순환과 생태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일본 간판 감독 중 한 명인 사카모토 준지(66)가 메가폰을 잡았다. 한국을 찾은 사카모토 감독을 최근 서울 동작구 예술영화관 아트나인에서 만났다.
‘오키쿠와 세계’는 코로나19 기간에 만들어졌다. 일본 베테랑 미술감독 하라다 미쓰오가 기획한 ‘좋은 날 프로젝트’가 출발점이었다. 사카모토 감독은 “코로나19로 영화 제작이 모두 중단되면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뭔가를 해보자는 생각이 형성됐다”며 “마스크를 쓰고 파이팅 외치듯 만든 영화”라고 소개했다.
영화는 젊은이들의 농밀한 감정 위에 세계의 순환을 이야기한다. 분뇨는 거름이 되고, 그 거름으로 자란 농작물은 사람 입을 거쳐 분뇨가 된다. 사카모토 감독은 “에도 시대에는 나무와 종이 등 모든 걸 재활용해 수명이 다할 때까지 쓰는 문화가 있었다”며 “일회용품이 넘쳐나는 지금 에도 시대 생활 방식을 돌아봤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밝혔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쇄국정책을 쓰던 일본이 미국의 요구로 개항을 하던 시점이다. 사카모토 감독은 “코로나19를 맞으며 여러 나라와의 관계를 생각했고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고민했다”며 “에도 막부 말기가 이와 비슷한 시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화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결말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작 방식이 독특하다. 흑백에다가 분뇨를 소재로 한 영화여서인지 투자가 잘 되지 않았다. 2020년 프로듀서가 사재를 털어 15분짜리 단편을 먼저 만들었다. 투자 유치를 위해 2021년 추가로 15분짜리 단편을 제작했다. 이후 투자 유치가 가능해졌고 60분 분량을 더해 장편영화로 완성됐다.
제작기간은 길었으나 실제 촬영 시간은 짧았다. 촬영 일수는 12일에 불과했다. 영화는 서장과 종장을 포함 9개 장으로 구성됐다. 각 장마다 작은 이야기가 완결되면서도 장이 연결돼 큰 이야기를 빚어낸다. 우연곡절 끝에 완성된 ‘오키쿠와 세계’는 일본 최고 권위 영화전문지 키네마준보 선정 2023년 일본 영화 1위로 꼽혔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등을 제친 결과다.
소품 담당이 '특수 제작'한 분뇨...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기도 한 분뇨는 골판지를 물에 불리고 기름을 섞어 만들었다. 사카모토 감독은 “소품 담당이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매일 자신의 배설물을 들여다보고 연구했다”며 “그는 스태프 사이에서 ‘똥의 마에스트로’ ‘똥의 소믈리에’로 불렸다”고 말하며 웃었다. 등장인물들이 분뇨를 뒤집어쓰는 장면에 사용된 건 여러 음식물을 발효시켜서 효과를 냈다. 배우 입에 들어가도 피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사카모토 감독은 “우리끼리는 ‘먹을 수 있는 똥’이라 불렀다”고 말했다.
사카모토 감독은 일본 영화계 대표적인 지한파이다. 한국에 오면 봉준호, 김한민 감독 등 한국 영화인을 만나 식사와 술을 함께 하고는 한다. 지난 25일에는 서울 용산구 한 극장에서 봉 감독과 대담회를 하기도 했다. 사카모토 감독은 “아직 정해진 것은 없으나 한국 영화인들과 공동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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