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위치에서 국민과 국가, 민족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국민의힘과 국민들께 감사 말씀을 드린다."
국민의힘 영입인재 김건 외교부 한반도교섭본부장
국민의힘은 29일 오전, 4·10 총선 인재영입식을 열었다. 총선 승리를 위해 당이 부른 각계각층의 인재들. 그 자리에는 멀끔한 슈트가 아닌 빨간 점퍼 차림의 김건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있었다. 그는 "우리 정치가 추구해야 할 목표는 무엇보다도 세계 어디서든 우리 국민들이 안심하고 마음껏 활동하면서 잘 사는 것을 이뤄내는 것"이라고 소감과 각오를 밝혔다. '세계 어디서든'이란 단어에서, 그가 외교가(家) 출신의 인재라는 사실은 분명 드러났다.
이날 그의 진지한 표정과 또렷한 각오에서 '국민들 위한 정계진출'이라는 진심은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에도 그는 "능력도 출중하고 후배들 경력개발까지 신경 쓰는 보기 드문 선배"라는 호평을 받아왔다. 외교부를 떠난 이날까지도 고위간부들이 "외교를 잘 모르는 여의도(국회)와 외교부 간 훌륭한 가교가 될 것"이라고 기대할 정도다. 단순한 사심의 선택이 아니었을 것이란 믿음이 내부에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이유가 어찌 됐든 그리 아름다운 작별의 모습은 아니라는 점이다. 먼저 한반도평화교섭본부 내 그를 따랐던 후배 외교관들에게 주는 메시지를 곱씹어봐야 한다. 후배들이 "그동안 본부장만 보고 자리를 지켰다"며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 말이다.
현재 한반도평화교섭본부는 위기 상황이다. 그리고 위기는 공교롭게도 그를 인재로 부른 국민의힘에서 비롯됐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9월 국정감사 때부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의 조직 축소를 압박해왔다. 단절된 남북관계 속 북핵협상도 중단됐는데, 평화체제와 대북정책을 짜내야 할 조직은 낭비라는 논리였다.
여권의 강한 압박에 외교부에서는 "한반도평화교섭본부가 사실상 '난파선' 신세로 전락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돌았다. 그런 와중에 수장은 깜짝쇼에 가까운 '정계 진출'을 선택했다. 후배 외교관들의 실망은, 아마 그 역시 각오했을 테다.
게다가 한반도평화교섭본부는 북한과 관련한 모든 외교활동을 총괄하는 핵심보직이다. 본부장에게 괜히 외교부 내 서열 4위, '차관급'의 지위를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런 그가 돌연 외교부를 떠나버렸다. 업무 공백을 채우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도 없이 말이다.
현직 외교 고위공무원이 곧바로 정계에 진출해버린 것도 초유의 사태다. 김홍균 1차관이 본부장을 지냈었다지만 공백은 공백이다. 당장 "부처 예산과 인력, 양자외교 업무를 통솔해야 하는 1차관이 여길 챙길 수 있겠나"라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아예 전례가 없는 건 아니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이었던 조태용 국정원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를 포함, 김 본부장의 선배들은 대부분 약 1~2년의 휴식기간을 갖고 정계 진출을 했다. 여기엔 다 이유가 있다. 공무원으로서 지켜야 할 덕목 중 하나인 '중립성'이 훼손되는 구도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그래야 자신들이 외치는 '초당파적 외교'에도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 '룰'을 김 본부장이 어긴 것이다.
미 국무부 국제미디어허브 런던지부 대변인을 지낸 제드 타르는 국무부의 인재 유출 상황을 다룬 외교학연구원(Institute for the Study of Diplomacy) 보고서 '국무부의 위기'를 언급하며 "고위공직자의 승진 과정과 행보가 후배 외교관들에게 연쇄효과를 불러온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과연 이 같은 지적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다만 바란다면, 이참에 후배 외교관들이 국회의원의 과도한 의전 요구와 당파논리에 휘말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힘써줬으면 한다. 가뜩이나 인력 유출이 많은 외교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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