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지역 폭설 소식에 설악산을 찾았다. 눈에 갇힌 설악동의 좁은 길을 걸으니, 소나무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어떤 소나무는 눈이 잔뜩 쌓여 형체가 거의 보이지 않았고, 권금성에서 내려다본 소나무는 온통 눈으로 뒤덮여 흡사 괴물처럼 보였다. 올겨울 끝자락에 ‘습기를 머금은 눈’이 많이 내려서인지 눈의 무게 때문에 소나무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대부분의 소나무들이 눈 속에서 꿋꿋하게 버티고 서 있는 의연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산 정상 바위 위에서 잎을 떨구고 몸을 가볍게 만든 앙상한 낙엽송들 사이에서 차가운 바람과 눈을 견디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소나무도 보였다. 그 순간 조선 단종 임금과 의를 지키려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성삼문이 읊었던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었다가”라는 시조가 떠올랐다. 그 당시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소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바친 선비들의 의연함이 그 소나무와 닮았다.
무거운 눈을 버텨내는 소나무들의 모습에선 ‘왕이 되려는 자,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이 겹쳐졌다. 결코 가볍지 않은 ‘왕관의 무게’를 견디는 자는 ‘눈의 무게’를 견디는 소나무처럼 꿋꿋하게 살아간다면 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폭설에 덮인 설악산 소나무는 우리에게 겨울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강인함, 꿋꿋함, 승리’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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