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 사고와 글쓰기 요령 가르치는 AI 개발
구조적 독해법 개발한 유명한 스타 논술강사가 창업
정보기술(IT) 분야의 거대 기업들이 각축을 벌이는 인공지능(AI) 분야에 작은 신생기업(스타트업)이 독특한 AI로 도전장을 던졌다. 주인공은 논술 분야의 스타 강사였던 김상진(58) 공동대표가 2021년 아내인 김세현(49) 공동대표와 창업한 레토리케다.
김상진 대표는 30년 동안 논술을 강의하며 발견한 비법으로 논술과 연설문 등 논리적 글쓰기가 가능한 'GLOT AI'를 개발했다. 그것도 우리말뿐 아니라 전 세계 주요 언어를 대부분 소화한다. GLOT AI는 사람에게 논리적 글쓰기를 알려주는 특이한 AI다. AI가 답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보여줘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하게 만든다. 즉 사람의 능력을 개발하는 AI인 셈이다.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이색 AI를 개발한 레토리케의 두 대표를 만났다.
국어 분야의 전설적 일타 강사
고려대 국어교육학과에서 언어학을 전공한 김상진 대표는 학비를 벌려고 시작한 아르바이트가 직업이 됐다. "대학 시절 영어, 수학을 가르치는 과외 아르바이트로 돈을 잘 벌었어요. 그때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다는 것을 알았죠. 그래서 1994년부터 대입 학원 강사를 했어요."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국어와 논술 강의를 시작한 그는 대번에 인기를 끌면서 서울 노량진 학원가로 스카우트돼 전설적인 '대강사'가 됐다. "당시에는 강남보다 노량진 학원들이 더 번성했어요. 스타 강사들이 대부분 노량진에 있었죠. 그때는 스타 강사를 대강사라고 불렀어요. 요즘 일타 강사죠."
당시 스타 강사들은 극장 암표처럼 웃돈을 얹어 사고파는 수강권 매매로 인기를 가늠했다. 그 역시 수강권 매매의 주요 대상이었다. "학원가 화장실에 스타 강사의 수강권을 산다는 연락처가 빼곡했어요. 학원에서 이를 지우는 게 일이었죠."
그런 그를 눈여겨본 사람이 메가스터디를 만든 손주은 회장이다. "메가스터디가 강남에 진출하면서 노량진 스타 강사들을 여럿 영입했죠. 그때 합류했어요."
그렇게 그는 30년간 강의를 하며 100만 명의 학생들을 가르쳤고 100억 원 이상 벌었다. 그 돈과강의 비법을 토대로 AI 스타트업을 만들었다.
‘국어는 집을 팔아도 안 된다’는 속설을 AI로 해결
김상진 대표를 스타 강사로 만든 비결은 스스로 개발한 '구조적 독해'(GLOT, General Logic Of Text) 비법이다. 그는 논술 강의를 하며 학생들이 논리적 글쓰기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 학생들에게 독해와 작문은 고역이다. "논술 강의를 듣는 학생들 대부분이 지문을 읽어도 이해를 하지 못해요. 언어에도 수학 같은 공식이 있는데 이를 모르기 때문이에요. 문제는 강사들도 공식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무조건 외우라고 하죠."
그 바람에 '국어는 집을 팔아도 안 된다'는 속설이 나왔다. "끝없이 문제집을 사서 풀면서 외워야 하니 돈이 많이 든다는 뜻에서 나온 속설이죠."
그는 학생들이 논술을 이해할 수 있도록 방법을 연구한 끝에 구조적 공식을 몇 가지 발견한 뒤 이를 방법론으로 개발해 구조적 독해(GLOT)라고 이름 붙였다. GLOT란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의 연결 구조를 파악하는 방법이다. "문장과 문장의 연결 구조를 알면 주제를 쉽게 파악할 수 있어요. 뒷 문장이 앞 문장을 이어받아 발전시키는지, 반대로 의견을 펼치는지, 결론을 내는 형태로 뒷받침하는지 연결 구조를 봐야죠. 이를 통해 중요하지 않은 문장을 걸러내면 주제를 쉽게 알 수 있어요. 이런 방식은 전 세계 언어에 동일하게 적용돼요. 이 방법을 알면 논리적 사고와 함께 독해와 글쓰기를 쉽게 할 수 있죠."
그는 여러 가지 형태로 구성된 GLOT를 30년간 강의하며 학생들을 통해 검증했다. "기존에 지문 하나를 읽고 문제를 푸는 데 10분 걸린 학생이 GLOT를 적용하면 3분 만에 풀 수 있어요. 덕분에 학생들의 국어 점수가 많이 오르면서 스타 강사가 됐죠."
그 바람에 이를 따라 하는 강의가 널리 퍼졌다. "저의 강의를 몰래 촬영해 따라 하는 강사들이 많이 등장했어요. 당시에는 특허 등록을 생각하지 못했죠."
그는 AI를 개발하면서 GLOT를 특허로 등록했다. "기술이 아닌 방법론을 특허로 등록한 사례는 흔치 않아요. 그래서 특허 등록에 2년 걸렸어요."
AI 소프트웨어 개발은 고려대와 포항공대,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출신의 개발자들이 맡았다. "AI 개발을 위해 카이스트와 네이버 등 여러 곳을 만났지만 개발이 어렵다고 하더군요. 마침 GLOT에 흥미를 느낀 여러 대학의 개발자 연합군들이 선뜻 나섰어요."
사람의 능력 향상에 초점
그가 개발한 GLOT AI는 논리적 글쓰기를 도와주는 AI다. 이용자가 논리 전개의 방향만 결정하면 AI가 이어지는 문장을 제시해 준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GLOT AI 홈페이지(www.heyglot.com)에 접속해 원하는 문장을 입력하면 AI가 이어지는 문장을 연결형, 반대형, 발전형 등 세 가지 형태로 제시한다. 이 가운데 하나를 고르면 여기 맞춰 선택할 수 있는 세 가지 형태의 다음 문장이 10~15초 안에 나타난다. "학생들이 GLOT AI를 이용하면서 문장 선택을 계속 따라가다 보면 구조적 독해 방법을 익힐 수 있어요. 논리적 사고를 하게 되면서 자기 주도 학습이 가능해 입시에 도움 되죠."
이를 위해 AI 학습에 필요한 수백 만개의 데이터도 김상진 대표가 직접 만들었다. "날마다 논리적 구조를 갖춘 문장 3,000개를 만들어 입력했어요. 2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AI 학습용 예문을 만들었죠."
GLOT AI와 기존 작문 AI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상진 대표는 논설문이나 연설문처럼 논리적 글쓰기를 돕는 AI는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기존 글쓰기를 위한 AI들은 소설이나 수필 등 문학 작품에 집중하죠. 여러 자료를 학습해 문장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문장과 문장 관계를 파악하지 못하면 논리적 글쓰기를 할 수 없어요. 오픈AI의 '챗GPT'와 구글 '제미나이'도 논리적 글을 가져다 보여줄 뿐 스스로 논리적 글을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김세현 대표는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다른 AI와 달리 이용자를 능동적 주체로 만들어 주는 점을 GLOT AI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GLOT AI는 사람이 능동적으로 문장을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독해와 논리적 글쓰기 능력을 향상할 수 있어요. 다른 AI는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들어요. 그래서 교육기관에서 AI 사용을 막는 곳이 많죠."
따라서 이용 목적에 맞춰 각각의 AI를 사용하면 된다. "빠르고 편하게 글을 요약하고 싶으면 다른 AI를 선택하고 글쓰기와 독해 능력을 키우고 싶으면 GLOT AI를 쓰면 돼요."
GLOT AI는 무료와 유료 두 가지 형태로 제공한다. 무료 서비스는 입력 문장을 50개로 제한한다. 월 1만8,000원을 받는 구독형 유료 서비스는 입력 문장 숫자에 제한이 없고 PDF와 JPG, TXT 등 다양한 파일 형태로 글을 저장할 수 있다. "모 교육기관에서 도입을 검토 중입니다. 도입되면 교사, 학생 등 420만 명이 이용할 수 있어요."
다국어 AI로 만들어 해외 수출
하지만 AI에 대한 일반적인 우려는 있을 수 있다. 디지털 기기에 빠져 책을 읽지 않고 글쓰기에 약한 요즘 학생들이 AI에 의존하면 더욱 논리적 글쓰기가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이에 대해 김상진 대표는 반대라고 주장한다. "독서만 열심히 하면 논리적 글쓰기를 할 수 없어요. GLOT AI는 게임처럼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들었어요. 따라서 논리적 글쓰기를 터득하면 자꾸 글을 쓰고 싶어 하죠." 디지털의 장점을 잘 살리면 거꾸로 아날로그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장점을 살려 그는 GLOT AI를 독해와 평가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원래 GLOT AI를 읽기, 쓰기, 평가 등 세 가지로 개발할 생각이었어요. 우선 쓰기 기능을 공개했고 앞으로 읽기와 평가 기능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구글 등 실력 있는 AI 개발업체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싶어요."
해외 확대 작업은 김세현 대표가 맡았다. 성균관대에서 경영학과 산업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영어에 능통한 무역전문가다. 졸업 후 한국주택공사와 BNP파리바 은행에서 일하던 그는 목재 파쇄기, 송유관이나 수도관 진단기 등을 수입해 판매하는 환경장비업체를 차려 10년 이상 운영하고 있다. "영어교사들과 영어교재를 공동집필하면서 교사 모임에 나갔다가 김상진 대표를 만나 레토리케를 함께 창업했죠."
앞으로 김세현 대표는 GLOT AI를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일본어 등 4개국어로 만들어 해외에 수출할 계획이다. "이미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일본에 GLOT 특허를 출원했어요. 올해 안에 4개국어로 GLOT AI를 내놓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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