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상담: <1> 피로 회복을 위한 맞춤형 약재 찾기
편집자주
인생 황금기라는 40~50대 중년기지만, 크고 작은 고민도 적지 않은 시기다. 중년들의 고민을 직접 듣고, 전문가들이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40~50대 피로 환자 증가세
쌍화탕 경옥고 공진단 등 놓고
내 체질에 맞는 맞춤 약재 찾아야
대기업 S사에서 근무하는 김모(49) 부장이 최근 내원해 심한 피로감과 정서적 불쾌감을 호소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기력감은 기본, 업무 중에도 집중력이 떨어져 머리가 멍하다고 했다. 퇴근 후엔 쓰러질 듯 피곤한데 정작 잠은 오지 않고 가까스로 잠들어도 자주 깬다고 했다. 운동도 해봤지만, 피로감만 더 심해진다고 하소연했다. 손발을 만져 보니 차갑다. 당연히 소화도 잘 안 될 것이다.
이런 피로감은 개인차가 큰 자각 증상이다. 모 제약회사의 광고 카피처럼 ‘피로는 간 때문’일까? 물론 그럴 수 있다. 한의학에서도 미열, 식욕부진, 메스꺼움, 권태감 등을 호소하면 간 피로로 진단한다. 하지만, 간 외에도 원인은 다양하다. 특히 몸이 붓고, 식욕부진과 함께 두통, 현기증을 동반한 권태감은 신장 기능이 나빠진 탓일 수 있다. 한 가지 원인을 맹신하는 진단을 피해야 하는 이유다.
강도 높은 피로감의 원인 가운데 하나는 신장 옆에 붙어 있는 ‘부신 이상’이다. 한의학에서 ‘정기가 달린다’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바로 현대의학의 부신 이상이다. 비유하자면, 부신은 우리 몸의 보일러다. 체온이 떨어지면 부신에서 열(에너지)을 낸다. 이런 부신에 문제가 생기면 면역의 균형이 깨져 피로는 물론, 알레르기까지 생긴다. 정서적으로 화가 많이 나기도 한다. 실제로 필자의 경우 환자가 다음 증상을 호소하면 부신 기능에 이상이 있는지 의심한다. △출산이나 수술 후 체질이 변했다 △많이 먹지 않는데 살이 찌고 체형이 변한다 △이전에 없던 알레르기 증상이 생겼다 △이런 지독한 감기는 평생 처음이다 △배고프면 허기를 참기 힘들다 등.
그렇다면 처방책은 무엇일까? 자기에게 잘 맞는 ‘맞춤 약’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한방의 진료 과정이다. 비싸고 좋다고 소문난 약이 아니라, 내 체질에 잘 맞는 약이 좋은 효과를 낸다. 이번 칼럼에서는 심한 피로에 널리 복용하는 약 몇 가지의 특성을 살펴보고 개개인에 맞는 약을 찾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먼저, 쌍화탕은 감기약으로 알려진 한방약이다. 원래 지나친 성관계로 발생하는 피로를 치료하는 데에 주로 처방됐는데, 언제부터인가 감기, 특히 몸살 기운이 있으면 한 병씩 사 먹는 약이 됐다. 실제로 쌍화탕의 주재료인 작약에는 근육을 풀어주는 성분이 있다. 몸살 기운에 쌍화탕이 효과가 있는 이유다.
요즘 유행인 경옥고는 어떨까? 경옥고는 지황 인삼 복령 꿀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핵심 성분인 지황(地黃)은 뼈와 근육, 혈액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또 인삼은 몸을 따뜻하게 하고 소화기를 튼튼하게 해 영양분을 몸이 효율적으로 흡수하도록 돕는다. 꿀은 소화기를 매끄럽게 만들고, 소나무 뿌리에 혹처럼 붙어 기생하는 복령은 신체 내부를 정화한다. 이렇게 각각의 기능을 가진 약재가 서로 상생해 효과를 극대화하도록 만든 약이 경옥고다. 오죽하면 <동의보감>도 “모발을 검게 하고 치아를 소생시키며 만성 기침과 허약을 치료한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약효를 칭송했겠나.
조선시대 왕들도 아껴 먹었다는 경옥고가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은 데에는 인삼의 역할이 컸다. 인삼은 2000년 전부터 그 약효가 알려졌으며 주산지가 우리나라로 돼 있는 귀한 약재다. <삼국사기>에도 “당나라에 선물로 인삼을 보냈다”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예전에는 인삼이 ‘한반도의 반도체’였던 셈이다.
귀한 약재이다 보니, 통제하기 위한 법적 조치도 삼엄했다. <경국대전>을 보면 “인삼을 감춰 간 자는 국경상에서 목을 베어라”라는 구절이 나온다. 일본과의 대마도 교역에서도 “인삼 밀매 시 적발하면 효수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인삼은 귀한 대접을 받았다. 일본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는 <주신구라(忠臣藏)>를 보면, 고려인삼이 천하의 명약으로 등장한다. 다 죽어가던 사람이 빚을 내 고려인삼을 먹고 기사회생했는데, 인삼값이 어찌나 비쌌던지 빚을 갚지 못해 목을 매달고 죽는다는 내용이 있다. ‘인삼 먹고 목맨다’라는 일본 속담까지 나왔다.
한반도 인삼이 유명한 이유는 그것이 지형이나 기후를 많이 가리는 ‘까다로운 약재’이기 때문이다. 마른 땅, 습한 땅을 모두 싫어하며 여름철에는 뜨거운 햇빛도 견디지 못한다. 역설적으로 이런 까다로운 성질이 바로 인삼의 강력한 효능의 근거가 된다. 그만큼 뜨겁고 강한 기운을 타고났기에 재배 환경이 조금만 어긋나도 자기를 말려버린다.
<동의보감>도 인삼의 효능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정신을 안정시키고 눈을 밝게 하며 심장의 구멍을 열고 기억력을 좋게 한다는 것. 특히 오랫동안 피로가 쌓인 질환에 원기를 보충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대 의학에서도 인삼이 독감(인플루엔자) 면역에 도움이 되고, 간질환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인삼이 들어간 약 가운데 공진단도 있다. 몸이 허해 원기를 보충해야 하거나, 머리에 열이 올라 두통이 심할 때 특히 효험이 좋다. 원나라 명의 위역림(危亦林)은 사향, 녹용, 인삼, 산수유, 당귀 등을 배합해 황제에게 바치기도 했다. 공진단의 기대 효과는 찬 기운은 위로 올리고 열은 아래로 내리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이다. 한의학은 몸의 균형을 중요시하는데, 특히 불에 해당하는 심장과 물에 해당하는 신장 사이의 균형에 더 집중한다. 그리고 이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을 주는 약재가 사향인데, 공진단에 이 사향이 핵심 약재로 사용된다.
히말라야산맥의 척박한 땅과 바윗길에서 사는 사향노루는 교미를 위해 1년에 한 번 정도 암수가 만나는 것 외에는 평생 고독하게 지낸다. 특히 사향노루는 봄이 되면 사향주머니를 버린다. 옛사람은 이런 사향노루의 습속에서 고독한 수도자의 모습을 떠올렸고, 그 연장선상에서 사향이 스트레스나 화처럼 양기가 지나치게 머리로 몰리는 것을 막는다고 여겼다. 그런데 실제로도 이 사향이 포함된 공진단은 몸의 균형을 잡아주고 간 기능을 보충하는 데 탁월하다. 한방에서는 여성의 갱년기 또는 간이 약해져서 생기는 질환에 공진단을 처방한다. 공진단이 숙취 해소에 좋은 이유도 이런 효과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쌍화탕, 경옥고, 인삼, 공진단 등은 모두 기력을 회복하는 데 좋은 약이다. 하지만, 공진단을 입에 달고 살았던 조선 경종은 37세, 철종은 33세에 세상을 떴다. ‘서제’(噬臍)라는 말이 있다. 사향노루가 사람에게 잡히면 자기 배꼽(사향)을 물어뜯는 습속에서 유래됐다.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한 원인이 평소 소중하게 여겼던 배꼽 때문임을 뒤늦게 알고 물어뜯어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는 의미다. 가장 귀중하다고 생각하는 돈, 권력 등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이런 것들로 인한 스트레스가 켜켜이 쌓이면서 몸의 균형이 무너진다. 뒤늦게 귀한 약재를 써 봐야 건강했던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긴 쉽지 않다. 내 몸에 맞는 좋은 약재도 중요하지만, 평소 습관과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단 얘기다.
연관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