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여성의 날 돌아본 여성 노동 실태>
절반 가까이 비정규직에 남성 임금의 70%
"커리어 지키려 비혼·비출산 택하는 2030
일·가정 양립에 2차 노동시장 처우 개선도"
"대학원에서 생화학 전공하고 연구실에서 4년간 일했어요. 마지막에는 서울대에서 연구하다가 입덧이 너무 심해 그만뒀죠. 육아에서 양가 부모님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녔고, 남편은 밤 12시에 퇴근하는 삶을 살았거든요."
'항암제 만드는 연구원'이 꿈이었던 40대 중반 양혜은(가명)씨는 7~8년의 경력단절 후 2019년 교육공무직인 돌봄전담사로 재취업했다.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운영되는 돌봄교실에서 학생들의 숙제 지도, 독서 지도 등을 담당한다. 그도 경력을 살리고 싶었다. "과학 실험하는 학원 강사를 해보려고 했는데 일이 밤 9시에 끝나더라고요. 육아라는 현실에 부딪혔죠." 그는 이제 다른 '워킹맘'들을 위해 일한다.
하루 8시간 전일제인 돌봄전담사의 기본급은 210만 원 전후. 더군다나 전일제는 드물고 임금이 더 낮은 4시간·6시간 시간제가 상당수다. 학교비정규직노조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력 부족 탓에 연차·병가를 못 쓴다는 돌봄전담사도 60%에 달했다. '질 좋은 일자리'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여성 10명 중 4명은 겪는 경단, 평균 8.9년
한국은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래 27년째 '성별 임금 격차'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 배경에는 여성에게 더 가혹한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가 존재한다. 소수의 안정된 고임금·정규직을 뜻하는 1차 노동시장과 다수의 불안정한 저임금·비정규직인 2차 노동시장으로 일자리 양극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여성은 상대적으로 2차 노동시장에 더 많이 편입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얘기다.
2022년 기준 여성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1만8,113원으로 남성 노동자(2만5,886원)의 70% 수준이다(2023 여성 경제 활동 백서). 그나마 10년 전(64.8%)보다는 소폭 개선됐다. 여성은 불안정 일자리에서 일하는 비율도 높다. 지난해 일하는 남성은 3명 중 1명(29.8%)꼴로 비정규직이었던 반면, 일하는 여성은 절반 가까이(45.5%)가 비정규직이었다.
성별에 따른 전공·직종 분리, 관리직 비율 차이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성별 임금 격차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근속연수, 즉 경력단절 문제가 꼽힌다. 양씨처럼 고숙련 직종에서 일하던 경우도 결혼과 이른바 '임출육'(임신·출산·육아)으로 경력단절을 겪고 나면, 고임금에 안정적인 1차 노동시장으로 재진입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일하고자 하는, 일해야 하는 경단 여성의 상당수가 박봉에 불안정한 2차 노동시장에 모이게 된다.
'2022년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경력단절은 25~54세 여성 10명 중 4명(42.6%)이 경험하고 평균 기간은 8.9년이었다. 경력단절 후 첫 일자리 임금은 이전의 84.5%였다. 경력단절 전후 취업 직종을 비교하면 사무직과 전문직은 각각 23.7%포인트, 5.2%포인트 줄고, 판매직과 서비스직이 각각 14.0%포인트, 12.5%포인트 늘었다.
경력단절 여성이 모이는 대표적 서비스 직군이 저임금과 간접고용으로 인한 고용 불안 문제가 집약된 '콜센터'다. 콜센터의 여성 취업자 비율은 70~90%에 달한다. 서울 지역 4년제 대학 졸업 후 무역회사에 다녔던 정숙희(가명)씨. 육아에만 전념하라는 시부모의 성화에 일을 관뒀다가 외환위기 때 콜센터에 취직했다. 그는 "다른 직업을 구하려 해도, 원래 하던 사무직은 저 같은 사람을 안 뽑더라"고 회상했다. 지난해 민주노총 실태조사에 따르면 콜센터 종사자는 월평균 소득이 220만 원이고 계약직이 45%에 달한다.
요양보호사, 아이돌보미, 장애인 활동지원사 등 '돌봄 분야'도 90% 이상이 여성인 저임금 직군이다. 장애인 활동지원사인 60대 박정숙(가명)씨는 "오늘 입사해 일하는 사람이나 저처럼 15년 일한 사람이나 급여는 똑같다, 세금 떼면 월 190만 원"이라며 "밥벌이가 안 되니 남성 활동지원사는 왔다가도 금방 나간다"고 말했다. 경력과 숙련이 인정되지 않고, 직종 특성상 시간제 일자리가 많은 돌봄 분야는 고착화된 저임금과 맞물려 종사자도 고령화되고 있다.
"30대 여성 경제활동 활성화, 무자녀 효과"
열악한 여성 일자리 현실에 2030세대 여성들은 경력단절을 피하려고 위해 아예 '무자녀'를 택하는 경향성도 확인되는 실정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30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 상승의 배경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30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상승 추세는 해당 연령대의 유자녀 여성의 비중 감소에 밀접하게 연동됐다"고 분석했다. 역설적이게도 여성 비혼·만혼·비출산 등의 결과로 70.1%(2023년 6월)라는 역대 가장 높은 30대 여성 경제활동 참여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30~34세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상승 요인 중 40% 정도는 '유자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도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과거에 비하면 일·가정 양립 여건이 개선됐다는 것. 그러나 나머지 60%는 '아이 없는 커리어우먼'이 늘어난 게 원인이었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력단절 엄마를 보고 자란 청년 여성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필수가 아닌 선택지가 됐고, 고학력 여성들은 (2차 노동시장으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도 여성 고용률이 많이 올랐지만 동시에 양극화도 심해지고 있다"며 "젊은 여성 중에는 고임금·고숙련 직종도 있지만 최근 양산되는 여성 일자리의 상당수는 대개 중장년층이 취업하는 저임금 보건·사회복지 일자리"라고 진단했다. 여성 일자리 중에서도 2차 노동시장 규모가 급증하면서 여성 평균 임금이 하락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저출생 완화를 위해 일·가정 양립 정책으로 2030세대가 경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력단절되면 끝'이라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다. 전윤정 국회 입법조사관은 "돌봄 노동에 대한 가치 재평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 등 주변부 여성 노동시장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3·8 여성파업조직위원회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성별 임금격차 해소 △돌봄 공공성 강화 △최저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는 '여성 파업'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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