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오갤러리 노상호 개인전 '홀리'
생성형 인공지능(AI)은 그럴듯한 창작 주체가 됐다. 명령어 몇 마디를 입력하면 빼어난 품질의 그림과 영상을 뚝딱 만들어내는 경지에 이르렀다. 예술적 창조성을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라 여긴 이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지만, 다른 이들은 AI를 작업 과정에 적극 받아들여 독창적인 회화 세계를 열기도 한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가 사랑하는 작가 노상호(38)가 그렇다.
첨단 기술도 실수를 한다. 노 작가는 그 지점에 주목했다. 그는 2022년부터 생성형 AI 프로그램 '미드저니'로 자신이 수집한 이미지와 작품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하나의 이미지를 넣고 AI에 "설명해 보라"고 주문한 뒤 그 설명으로 다시 이미지를 만들면서 '해석'과 '생성'을 반복하는 식이다. 반복 끝에 AI는 오류가 담긴 이미지를 우연히 뱉어냈다. '눈사람'을 넣었더니 '불타는 눈사람'이 나온 것처럼 말이다. 이런 기이한 도상을 캔버스에 얹혔고, 그 위에 에어브러시(캔버스와 맞닿지 않고 도료를 분사해 도색하는 기구)로 그림을 그렸다. 하나의 회화 작품이 나오기까지 그의 손길이나 붓질이 닿지 않는 점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노상호 개인전 '홀리'에는 회화를 비롯해 영상, 조각 및 설치 등 40점이 전시 중이다. AI, 3D 프린팅 등 디지털기술을 적용한 최근작으로, 40점의 작품명이 전부 '홀리(holy·성스러운)'다. 노 작가는 기술적 오류로 생성된 비현실적 장면에서 신화적 '성스러움'을 읽어냈다. 손가락이 6개인 손, 머리가 2개인 사슴 등의 도상은 단순한 오류의 결과이지만, 한편으로는 경이와 공포라는 양가적 감정을 느끼게 한다.
노 작가는 인간과 AI를 대립항에 놓지 않는다. 새로운 공부거리로 삼거나 게임처럼 흥미롭게 바라보며 무언가를 시도해 자신만의 결론을 내는 데에 더 관심이 많다. "AI 작가가 인간을 위협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아요. 그런데 다른 인간 작가의 전시는 위협 아닌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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