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프리드먼·대니얼 로리슨, '계급 천장'
"부모가 의사인 사람은 부모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 의사가 될 확률이 무려 24배나 높다. 마찬가지로, 변호사의 자녀는 법조인이 될 가능성이 17배 더 높고, 영화 및 방송 분야 종사자의 자녀는 부모와 같은 분야에 진출할 가능성이 12배 더 높다."
-'계급 천장' 중에서
사회 불평등을 야기하는 직업 성취의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개인의 능력차로 설명하고 싶어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교육적 성취는 이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불평등 문제에 천착해온 영국 사회학자 샘 프리드먼·대니얼 로리슨은 책 '계급천장'에서 수세대에 걸친 정치인들과 정책 입안자들의 희망과 확신에도 불구하고 교육적 성취가 영국 사회에서 더 이상 '평등 기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증명한다.
'계급천장'이란 특정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능력과 기술을 갖추더라도 성공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천장에 부딪힌다는 의미다. 노동 계급의 자녀가 엘리트 직업을 갖기 어렵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 책은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간다. 출신 계급에 따른 임금 격차, 특정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의 비율 등 각종 통계와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동원해 노동 계급 출신이 엘리트 직종에 진입하더라도 한계에 직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엘리트 직군 종사자들의 인터뷰에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능력주의' 개념이 사기이며, 엘리트 직종에서 '능력'으로 분류되는 대부분 자질이 계급 특권의 '순풍'과 분리될 수 없다"는 자기 고백과 진단이 넘쳐난다는 점은 특히 흥미롭다. 결국 현재의 시스템이란 '잘 사는'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 그 계급을 이용해 '더 잘 사는' 위치에 서게 하는 시스템이라는 게 저자들의 결론이다. 책의 부제를 인용하자면 계급천장은 한 인간의 커리어와 인생에 드리운, 여간해선 떨치기 힘든 긴 그림자다.
영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 블랙홀처럼 대한민국을 빨아들이는 의사 파업 사태에서 나온 말들을 듣고 있자면 '계급 특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영국 사회에 대한 저자들의 분석과 진단이 부쩍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우리 사회도 '계급'이 어떤 담론이나 이념보다 상위의 가치로 작동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됐기 때문일 터다. 과연 계급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건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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