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그제 의사 집단행동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전공의 집단사직 보름여 만에 처음이었다. 이날 국무회의에서부터 이어진 발언의 수위는 상당히 높았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불법적인 집단행동에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했고, “국민을 위한 의료개혁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추진해 반드시 완수하겠다”고도 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정부는 조금도 물러설 뜻이 없다고 쐐기를 박은 것이다.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집단행동을 이어가는 의사들을 향해 정부가 단호한 의지를 밝히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와 국민은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는 이들의 오만한 인식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번마저도 물러선다면 앞으로 그 어떤 정부도 의료개혁에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둬야 하는 게 정부다. 의사들이 직업윤리를 저버리고 환자들에 등을 돌린다고 정부마저 손을 놓을 수는 없다.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1,000억 원 넘는 예비비를 편성하고 매달 2,000억 원 육박하는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장기전으로 치닫는다면 돈으로만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현장 의료진은 지칠 대로 지쳤고, 환자들은 수술 연기 등으로 하루하루 애를 태우고 있다. 오늘부터 간호사들도 응급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을 하고 응급 약물을 투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데, 어디서 구멍이 생길지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강대강' 대치의 최전선에 나서는 건 대통령이 아니라 총리나 장차관이어야 한다. 대통령은 만에 하나 파국으로 치달을 경우 전공의들이 의료현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주는 최후의 보루로 남아 있는 게 맞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명분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자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 상승을 위해 과속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한다. 의대 증원을 관철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처 최소화를 위해 출구를 찾으려는 노력까지 저버리진 말아야 할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