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국정농단: ⑦달라진 서초동]
편집자주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헌법재판소의 역사적 선고가 나온 지 7년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국정농단'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진 수사와 재판은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국정농단은 대한민국 정치지형을 재편했을 뿐 아니라, 법원과 검찰 조직에도 큰 파장을 남겼습니다. 국정농단이 이 나라에 남긴 유산과 숙제는 무엇인지, 이 사태가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찬찬히 돌아보기 위해, 한국일보는 법조인 50명을 상대로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수사·재판 과정에 관여했거나, 사건을 가까이서 살펴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증언과 각종 통계, 기록 등을 바탕으로 '2,555일(7년)의 기록'을 다시 정리해 보려 합니다.
※국정농단 수사와 재판 7년의 총평가, 수사 과정, 재판 결과, 바뀐 정치 지형, 직권남용 수사가 남긴 폐해를 다룬 이전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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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에 필수적인 것 중 하나가 예측 가능성이죠. 그런데 직권남용죄를 넓게 쓰면, 앞으로 공무원이 어떤 결정을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
지난 정부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가 한창이던 2018년.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하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노리던 그 서슬 퍼런 시절, 차장검사 출신의 변호사가 직권남용죄의 의미를 묻는 한국일보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공무원의 직무를 법으로 엄격하게 처벌하게 되면 운신의 폭이 좁아져, 공직사회에 보신주의와 소극 행정이 만연해질 것이란 우려였다.
그로부터 6년, 그의 예측은 꽤나 들어맞았다. '직권남용 전성시대'의 후유증은 일반 공직사회를 넘어 법조계에까지 파급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활발했던 법원 내부 토론은 '후배들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오해받을까봐 뜸해졌고, 명령·복종 관계가 뚜렷하던 검찰에서도 사건 관련 지시를 일부 꺼리고 있다는 내부자들의 증언이 나왔다.
가로막힌 법관끼리의 소통
특히 사법부는 '소통 장해'를 겪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조직문화가 경직됐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를 앞세워 각급 재판에 개입했다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제기되면서, 법관 독립성 침해 문제가 민감하게 부각된 영향이다.
고참급 법관 S 부장판사는 "선∙후배 판사끼리 술 한잔하면서 사건에 대한 여러 쟁점을 논의하곤 했는데 이젠 다 옛날 얘기"라고 손사래를 쳤다. 다른 현직 판사도 "행정처도 일선 법원과 소통을 워낙 신중하게 하다 보니, 정책을 새로 시행하는 게 있어도 권고나 지침을 보내는 일이 드물어졌다"고 최근 사법행정 분위기를 귀띔했다.
3명의 법관이 함께 결론을 도출하는 합의부 재판부 안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통합진보당 관련 행정소송에서 후배인 배석 판사들과 상의 없이 판결문을 고친 부장판사가 '사법농단' 연루자로 재판에 넘겨진 일은, 무죄 판결과 무관하게 법원에 경각심과 위기감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30년 가까이 법관 생활을 하고 있는 D 부장판사는 "요즘은 재판장이 보기에 주심의 견해가 잘못된 것 같아도 지적하기 어려운 분위기"라며 "악성 민원인이 찾아왔을 때 대처법 등 재판 진행에 대한 조언조차 건네기 조심스럽다"고 했다. 집단지성이 작동하기 어려워졌다는 하소연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대처 과정에서 빚어진 법원 내 갈등도 완전히 봉합되지는 않았다.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됐던 전직 사법부 수뇌부들이 줄줄이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결과적으로는 자정의 기회마저 날린 모양새가 되고 있다'는 자조적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한 부장판사는 "지금의 재판 현황만 놓고 보면 직권남용죄로 처벌이 어려운 부분에까지 수사의 잣대를 들이밀면서 감정의 골과 상처가 깊어진 것 같다"면서 "사법행정권 남용 문제 해결의 차원에서는 아쉬운 성적표"라고 짚었다.
위계질서 뚜렷한 검찰에서도 '조심'
상대적으로 수평적이었던 법원과 달리 상명하복 문화가 강했던 검찰 쪽은 어떨까. 검찰 역시 '직권남용'을 피하기 위해 '직무유기'에 가까운 상태를 방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는 게 전∙현직 검사들의 전언이다.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M 차장검사는 "과거엔 비일비재했던 봐주기 의혹 등 악습은 상당히 없어졌다"면서도 "일선 수사를 지휘∙감독할 권한을 가진 대검찰청의 지시마저도 자칫하면 부당하다고 비칠 수 있는 우려가 커졌다"고 털어놨다.
아예 상부의 수사 지도를 꺼리는 경향이 생겼다는 목소리도 있다. 현직인 E 검사는 "규정에 있는 것만, 그것도 보수적으로 해석해서 따르는 편"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고검장 출신인 P 변호사도 "자기 생각과 반대되는 의견이 나오면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놓는 풍토가 생겼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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