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기후행동]
튼튼한 팔다리 있으면 할 수 있는 플로깅
분리배출 효과 있지만 측정 어렵고 '미미'
그럼에도 "기후 문제에 관심 갖는 출발점"
'녹색 선거' 요구 등 정치·사회적 참여로도
편집자주
기후위기가 심각한 건 알겠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일상 속 친환경 행동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요? 열받은 지구를 식힐 효과적인 솔루션을 찾는 당신을 위해 바로 실천 가능한 기후행동을 엄선해 소개합니다.
"여기가 쓰레기 줍는 모임 맞나요···?"
일요일인 10일 오전 10시, 많은 사람이 곤히 늦잠을 잘 주말 아침에 2040세대 20여 명이 서울 마포구 난지도 공원 인근에 삼삼오오 모였습니다. 집게와 봉투를 든 사람이 접선하듯 옆 사람에게 슬쩍 묻습니다. '쓰줍'하러 온 쓰레커(SREKKER) 회원 맞냐고요.
플로깅, 쓰줍(쓰레기 줍기), 줍깅(줍기+조깅), 지구 닦깅. 이런 말 어디에서 한번쯤 들어보셨나요? 전부 길거리, 공원, 해변가 등을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행위를 뜻하는데요. 튼튼한 팔다리, 여러 번 굽혀도 아직 짱짱한 허리만 있다면 누구든 쉽게 실천할 수 있어 환경과 기후 문제에 관심 있는 MZ세대 사이에서 인기입니다.
'누구나 실천 가능한 기후행동'을 소개하고자, 기자도 이날 직접 참여해봤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숙제로 동네에서 담배꽁초 줍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습니다. 여느 번화가보다는 깨끗했지만, 공원 곳곳을 샅샅이 훑어보니 꽁초부터 종이박스, 음료 담긴 일회용 종이컵, 플라스틱 뚜껑, 땅에 묻힌 신발 한 짝까지 갖가지 쓰레기가 튀어나왔죠. 2시간쯤 지나자 각자 손에 쓰레기 봉투가 주렁주렁 열립니다. 누가 누가 많이 모았나 무게를 재서 친환경 비누도 경품으로 받고요(저도 받았습니다). 활동의 끝은 '분리배출'입니다.
평소와 다르게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콧바람도 쐬고, 쓰레기도 줍고, 도란도란 사람들과 환경을 주제로 대화도 나누니 기분이 가뿐했습니다. 하지만 별안간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내가 쓰레기 좀 줍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이런 막막함과 의구심을 품고, '쓰레커'와 '공크루' 두 플로깅 단체 대표들을 만나서 물었습니다. "쓰레기 주워서 세상이 바뀔까요?"
플로깅 그 자체보다 중요한 건 '인식 변화'
'힙한' 문화가 된 플로깅은, 2016년 스웨덴에서 시작돼 환경 보호와 운동 효과가 결합된 활동으로 주목을 받으며 금세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plogging'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글은 인스타그램에 32만여 개에 달하고, 관련 틱톡 영상은 2,330만여 회나 조회됐죠. 환경단체부터 지자체, '친환경 이미지'를 원하는 기업들까지 플로깅 행사를 엽니다.
그런데 플로깅이 단순한 '거리 미화'를 넘어 기후 위기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쓰레커 공동대표 중 한 명인 정성균(29)씨는 "정량적으로 굳이 따져보자면 플로깅하면서 이동한 거리를 차량 대신에 도보 이동했다고 보거나, 모은 쓰레기를 분리배출한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고 말합니다.
보통 우리는 10분에 1,000보쯤 걷는데요. 2시간 동안 천천히 걸으며 쓰레기를 주었다면 1만 보(약 6.5㎞)쯤 걸은 셈이죠. 만일 이 거리를 승용차(휘발유)를 탔다면 이산화탄소 0.8kg이 배출됐을 것입니다(한국 기후환경네트워크 탄소발자국 계산기). 또 재활용이 가능한 페트병·캔 등을 분리배출만 잘해도 1인당 연간 이산화탄소 88kg을 줄일 수 있다고 해요(환경부 탄소중립 생활 실천 안내서). 수거된 폐기물 양이나 종류에 따라 분리배출 효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탄소발자국 줄이기 효과가 없지 않은 것이죠. 물론 그 절대량은 연간 한국 온실가스 배출량 6억5,450만 톤(2022년 잠정치)에 비교하면 '귀여운 수준'이겠지만요.
하지만 플로깅 경험자들은 입 모아 '확산 효과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진입장벽이 낮은 플로깅에서 시작해 다른 기후행동 실천으로 이어지고, 주변인에게도 기후·환경 문제를 알리는 효과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2월 인스타그램에서 쓰레커 게시물을 우연히 보고 '쓰줍'을 시작한 김민정(30)씨는 "생활 반경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점차 늘려가자는 마음으로 제로웨이스트숍 '알맹상점'에서 환경 독서모임을 하고, 천연 수세미를 쓰고, 옷은 중고로 사거나 친구·자매와 나눠 입고 있다"고 했습니다.
2021년부터 플로깅 단체 '와이퍼스' 활동을 한 천혜원(29)씨도 지난해 1월 '공크루'라는 이름의 새로운 쓰줍 모임을 열었습니다. 지금까지 27회 행사에 총 155명이 참여했다고 해요. 혜원씨는 "플로깅을 하다 보면 '이 많은 쓰레기가 어디에서 왔나, 줄이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든다"며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중고고, 배달 대신 직접 요리하기, 육식보다 가급적 채식하기, 용기(容器)내 챌린지(다회용품 사용 운동) 등 여러 실천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사실 지구를 생각해 친환경 소비를 하다 보면 내 지갑도 지킬 수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혜원씨는 '커뮤니티의 힘'도 강조했어요. "혼자서만 실천하면 지칠 수 있거든요.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었다고 해도, 여전히 '유난이다'라는 시선도 있고요. 같은 관심사와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응원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되는 것 같아요."
활동에 그치면 한계…실천·요구로 이어져야
물론 기후위기는 절대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 정책, 기업 대응과 산업 전환, 에너지 전환 등 거시적 변화가 필수적이죠. 다만 플로깅이 그런 변화의 시작점이 될 조짐이 보입니다. 혜원씨는 지난달 공크루 회원과 함께 그린피스가 연 '기후 토크 페스티벌'을 찾아 기후 정책에 대한 젊은 정치인들의 생각을 들었다면서, "저도 기후 유권자로서 더 많이 알고 배워가려고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쓰레커도 최근 다른 청년단체 4곳(기후변화청년단체GEYK·빅웨이브·웨어마이폴·지구를지키는배움터)과 함께 '2024년 총선을 탄소중립 친환경 녹색 선거로 치러달라'는 연서명을 받았습니다. 정치권에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을 위한 비전과 목표, 실천 의지를 공약하라"는 요구에 더해 △선거 유세 시 1회용품 사용 자제 △무분별한 개발 공약보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녹색 공약 등을 촉구한 것이죠.
환경 비영리단체 '이타서울'에 다니는 이승윤(27)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환경공학을 전공해서 저도 예전에는 산업 전환 같은 거시적 관점에서만 환경 문제를 생각해 플로깅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하지만 '거창한 것보다 한 사람의 변화'를 강조한 한 사회적 기업 대표님 강연을 듣고, 일단 동네 환경부터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최근에는 플로깅을 자주 해요. 고등학교 때 산 운동복을 계속 입고, 휴대폰도 5년 넘게 쓰며 소비 자체를 줄이고 최대한 물건도 오래 쓰려고 하고요."
플로깅만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실천과 참여, 목소리로 이어진다면 세상을 바꾸는 단단한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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