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킬러문항' 논란 등으로 불거진 사교육 카르텔의 실체가 감사원 감사를 통해 확인됐다. 감사원은 특히 2023학년도 수학능력평가(수능) 영어 23번 문항 지문과 관련한 '짬짜미 출제' 의혹의 실체도 상당 부분 파악했다. EBS 교재와 사설 모의고사 중복 출제에 있어 출제위원-현직 교사-학원 강사-교육과정평가원 간 유착 관계를 포착, 이를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일부 교원들이 30명 이상의 '피라미드 조직'을 꾸려 사교육 업체에 수년간 문제를 제공하며 수천만 원의 대가를 챙긴 다수 정황도 드러났다.
감사원은 이 같은 내용의 '교원 등의 사교육 시장 참여 관련 복무실태' 감사 결과를 토대로 신속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교원과 학원업체 관계자 등 56명을 지난달 7일 등 3차례에 걸쳐 경찰에 수사 요청했다고 11일 밝혔다. 감사 대상은 교육부에 문항 거래 등을 자진신고한 교원 중 최근 5년간 5,000만 원 이상의 대가를 제공받았거나, 알선비를 챙기는 등 비위 정도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200여 명이다.
이번에 수사 요청된 56명 중에는 현직 교원 27명, 학원 강사 등 사교육 업계 관계자 22명을 비롯해 수능 출제위원으로 참여한 대학교수 1명과 평가원 직원 4명, 전직 입학사정관 1명이 포함됐다. 이들은 사안에 따라 청탁금지법 위반, 업무방해, 배임수증재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감사원은 "이외 문항 거래를 통해 금품을 수수한 것으로 확인되는 다수 교원에 대해서도 감사위원회의의 의결을 거쳐 엄중히 책임을 묻는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은 논란이 됐던 23학년도 수능 영어 23번 문항의 출제 과정을 규명했다. 해당 문항은 문제 지문이 일타강사 교재와 일치해 '짬짜미 출제' 의혹이 일었다. 국내 미출간 원서의 특정 단락이 일타강사 교재와 수능, 비슷한 시기 제작된 EBS 수능 교재 초안에 나란히 실린 것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해당 문제를 수능에 출제한 대학교수 A씨는 전년도 EBS 수능연계교재를 감수하면서 알게 된 지문을 무단으로 사용했다. 명백한 EBS 보안서약서 위반이다. A씨가 감수한 EBS 교재는 23년 1월 출간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 지문은 대형 입시학원인 메가스터디의 유명 강사 B씨가 22년 9월 모의고사로 발간한 문제집에도 실려있었다. B씨는 평소 EBS 교재 집필 경력이 있는 고교 교원 C씨에게 문항을 공급받았다.
감사원은 "B강사는 평소 교원에게 문항을 사서 모의고사를 만들었고, C교사와 22학년도 수능 검토위원이었던 D교사로부터 출간 전 EBS 교재 파일을 입수하는 등 수능 문항 출제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부연했다.
수능을 주관하는 평가원은 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고, 사후에는 은폐했다. 평가원은 수능 문항 확정 전 모의고사 문항과 중복 검증을 위해 B강사의 모의고사를 계속 구매해왔으나, 유독 22년에만 석연찮은 이유로 누락했다. 또 평가원 담당자들은 이 문항에 대해 전체 이의신청 건수의 62%에 달하는 215건이 집중됐음에도 '수능 출제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해당 안건을 아예 이의심사위원회 심사 대상에서 제외해버렸다.
감사원은 교원과 사교육 업체 간 문항 거래는 조직적으로, 상당 기간 고착화된 것으로 판단했다. 고교 교원 E씨는 수능·모의평가 출제 합숙 중 알게 된 검토 및 출제위원 참여 경력이 있는 교원 8명을 포섭해 소위 '문항공급조직'을 구성, 최근 4년간 2,000여 개 문항을 다수의 학원과 강사에게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E씨는 그 대가로 총 6억6,000만 원을 받아 참여 교원에게 3억9,000만 원을 지급하고, 자신은 2억7,000만 원을 챙겼다. 특히 E씨는 탈세를 위해 배우자 등의 명의 계좌로 금품을 수수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아예 배우자와 공모해 출판업체를 운영하며 동료 교원에게 구입한 문항을 대형 학원에 공급하기도 했고, 교감이 동문 선후배들과 함께 '문항제작팀'을 꾸려 '킬러문항'이라 불리는 고난도 수학 모의고사 문항을 제작, 학원에 공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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